광양신문에 물과 거름을
광양신문에 물과 거름을
  • 한관호
  • 승인 2009.10.22 09:10
  • 호수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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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경영이 어려워 신문 발행을 못할 처지였습니다. 오한홍 상무가 돈을 빌려와 겨우 신문을 인쇄 했습니다’. 창간사를 하던 옥천신문 이안재 사장의 눈가가 젖어 갔다. 지난 16일, 명가 세미나실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옥천 군민들도 숙연해졌다. 필자도 가슴이 먹먹해져 눈을 감았다. 옥천신문과 다를 바 없었던 남해신문에서 보낸 1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안재 사장이 인사를 이어갔다.
월급 25만원을 받으며 시작한 기자생활, 그 박봉을 견디지 못하고 더러 동료들이 떠나 갈 때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단 한 푼의 촌지도, 어떤 부정한 돈도 받지 않고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오늘까지 1001호를 발행해 독자님들께 배달했습니다. 옥천 군민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장호순, 김용호, 이용성 교수 등 언론계 손님들도 옥천신문의 스무 살 생일을 기꺼이 축하했다.

전국 480여개의 지역 언론들, 그 가운데 최고의 지역신문으로 평가받는 옥천신문이다. 구독료 납부 율, 지면 정체성, 심사가 까다롭기로 널리 알려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선정사 연 5회 선정이 이를 입증한다. 옥천신문은 지난해 ABC 협회가 조사한 유료 독자 수 조사에서 발행부수 대 구독료 납부 율 80%를 기록해 대한민국 언론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군청을 비롯해 권력기관과는 늘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지역 의제에 대해서는 토론회를 열고 기획기사 등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대안지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을 펼쳐 이를 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킨 것도 옥천신문이다. 그랬기에 언론인 가운데 옥천신문 하면 모르는 이가 없다. 언론에 입문하려는 신문방송학과 대학생들이 줄 지어 실습을 오는 신문사. 지역 언론들이 윤리강령, 편집규약을 본받고 지역신문발전위 심사를 앞두고는 옥천신문의 기획서를 벤치마킹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늘의 옥천신문을 만들었는가.
어떤 이들은 옥천신문 종사자들의 헌신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칭송한다. 허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 지역 언론의 전형을 만든 건 겨우 인구 5만에 불과한 옥천군민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독자와 광고주들이다.

대한민국의 언론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송건호 선생의 후예들답게 옥천군민들은 옥천신문에 물과 거름을 주어 길러냈다. 그랬기에 창간 20주년 행사의 주체는 옥천군민들이었다. 이날 감사패, 공로패 등을 받은 이들은 군민들을 대신한 평범한 촌로들이었다. 또 하나 옥천신문의 근간을 튼실이 한 숨은 주역, 두 분의 여성들이 있었다. 매 주, 20년을 한 결 같이 옥천신문 발송 작업을 한 주부들이다. 아마도 옥천신문 직원들 이상으로 창간 20년의 감회가 남달랐을 분들이다.  

이처럼 박봉과 중노동에도 참 언론인이라는 자긍심 하나로 사는 직원들, 중앙언론은 살피지 않는 내 고장 소식을 전하는 지역 언론의 존재성을 자각한 군민들의 보살핌,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듯 궂은일을 묵묵히 수행해낸 발송 작업 아주머니들, 그들이 전국 최고의 옥천신문이란 브랜드를 키워 나가고 있다. 흔히들 지역신문을 두고 귀 동냥으로 다 알 수 있는 지역 소식을 뭐 하러 돈 주고 사 보느냐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안 나오는 데 그게 신문이냐고들 한다.

하지만 보자. 광양 소식이 중앙방송이나 중앙 언론에 나오는 게 몇 번이나 되는가. 고작해야 광양제철과 관련된 뉴스가 전부이다 시피하다. 방송이나 신문들은 서울 소식 담기에만 바빠 지역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광양신문이 어느새 창간 1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초창기 옥천신문이 그러했듯 마음 놓고 정론직필을 구사할 수 있는 경영 토대는 아직 요원하다. 이 고난의 길을 헤치며 광양신문도 창간 20주년, 50주년을 향해 부단히 나아갈 수 있을까. 그 답은 광양시민들에게 있다.

광양시민들이 괜찮은 지역신문 하나 가지는 일, 창간 10주년을 맞는 광양신문에 구독과 광고라는 물과 거름을 주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