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구하려던 십대 '의로운 죽음' 인정
친구 구하려던 십대 '의로운 죽음' 인정
  • 최인철
  • 승인 2009.12.17 10:21
  • 호수 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양제철고 2학년 고 김태한 군 의사자 결정

힘이 떨어졌다. 친구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다시 물속에 뛰어들어 친구를 구할 자신이 없었다. 태한이는 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친구를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팔 조차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체력이 다 빠졌다. 그런 태한의 눈에 누군가 던져준 튜브를 붙잡고 구조되는 친구의 모습이 가물가물 보였다. 태한이의 얼굴에는 잠시 안도의 빛이 내비쳤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의식이 멀어져 갔다. 자꾸만 친구들의 모습이 멀어져 갔다.

친구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 청소년의 죽음을 국가가 의로운 죽음으로 인정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의자상자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다 숨진 광양제철고등학교 2학년 고 김태한 군을 의사자로 결정됐다.

고 김태한 군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15일 주말을 이용해 친구 11명과 옥룡면 동곡리 모 산장 앞에 계곡에 물놀이를 갔다. 그러나 이날 오후 2시 48분경 친구 정 아무개 군(18)이 수영 미숙으로 물에 빠져 익사 위기에 빠지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태한 군은 당시 수영을 처음 배운 친구 정 군이 3미터 깊이의 물가에서 허우적대자 자신도 계곡을 수차례 왕복해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으나 주저 없이 정 군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체력이 소진돼 1차 구조에 실패한 채 물 밖으로 나온 태한 군은 힘이 모두 빠진 상황이었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친구를 위해 다시금 물에 뛰어들었다가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정 군은 상황을 목격한 한 청년이 던져 준 튜브를 잡고 다행히 구조됐다.

그러나 탈진한 태한 군은 간신히 주변 바위를 잡고 물을 빠져 나왔으나 이미 동공이 풀어진 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코로 약하게 숨 쉬는 것을 확인한 주변 사람들이 급하게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인근 병원으로 이송 중 끝내 숨졌다.
안종진 광양제철고 교감은 “태한이는 1학년 때부터 자치회 안전부부장을 역임할 정도로 지도력과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다”며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자신의 안전보다 위기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용기는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의협심이 강해 친구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며 “태한이의 죽음이 의사자로 인정된 것은 먼저 하늘나라로 간 태한이의 뜻을 국가가 인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태한 군의 육신은 숨진 하루 뒤 영세공원에서 화장돼 공원 인근에 묻힌 어머니의 묘지 곁에 뿌려졌다. 태한 군의 어머니는 지난 2004년 심부전증으로 판정 받은 뒤 5년여 투병생활을 하다 2008년 3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태한 군이 어머니의 곁에서 편히 잠들기를 소원했다.

학교에서 진행된 영결식도 눈물바다였다. 자신을 구하려다 숨진 태한 군을 위해 정 군은 눈물의 조사를 읽으려다 설움을 이기지 못해 끝내 조사마저 다 읽지 못했고 다른 학생들로 모두 친구를 먼저 보낸 아픔을 울음을 감추지 못했다. 태한 군은 친구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쓴 100여 통의 편지와 함께 길고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