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장학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장학금
  • 최인철
  • 승인 2009.12.24 09:46
  • 호수 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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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면 조태규 옹 보훈연금 모아 백운장학금 기탁

22일 오전 광양시청 주민접견실에서 여든을 훌쩍 넘긴 어르신 한 분이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다. 어르신은 언뜻 보기에도 몸이 불편한 듯 보였다. 어르신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광양시청 2층에 있는 시장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그 짧은 거리조차 멀게 만 느껴졌다. 허리를 약간 구부린 자세로 다른 한 분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스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르신의 이름은 조태규 옹. 봉강면 조령리 하조마을 출신으로 군 시절을 빼고는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광양사람이다. 어르신의 올해 나이는 여든 넷이다.

백발이 허연 조태규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겨우 추스리며 엉성한 폼으로 짚고 온 지팡이를 넘어지지 않게 만 몸에 기댄 채 파르르 떨린 야윈 손으로 이성웅 시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불쑥 인재육성에 써 달라며 생활비 아껴가며 푼푼이 모은 310만원을 백운장학회에 기탁했다. 생활하기에도 모자라는 보훈연금을 모아 큰일에 써 달라는 어르신의 따뜻한 마음이 접견실을 훈훈하게 덥혔다.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청각을 거의 잃었고 다리 한 쪽은 잃고 의족을 했다. 특히 의족은 할아버지 평생을 함께 해 온 친구다. 벌써 60년을 함께 할아버지의 걸음을 지켜 준 고마운 벗이기도 하고 눈물겨운 애환인 셈이다.

조태규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다. 이곳저곳 총알 빗발치는 전장을 누비다 일전일퇴 공방이 치열했던 백마고지에서 날아든 포탄에 한 쪽 다리를 잃었다. 청각이 좋지 않은 어르신을 대신해 동행해 온 누이부부가 대신 들려주는 사연이다.

매제 서정만 씨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포탄에 맞아 한 쪽 다리를 잃었지만 80년이 넘는 세월을 자신보다는 남을 돕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며 “당신은 불편한 몸으로 채소밭을 가꾸고 가축을 키워 생활하고 아이들을 다 키운 뒤에는 뭔가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시더니 국가에서 나온 보훈연금을 모아 이렇게 백운장학회에 기탁하고 싶다는 말씀을 얼마 전부터 줄곧 하시더라”고 들려줬다. 

10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줄곧 혼자 고향인 봉강면 조령리를 지켜온 할아버지는 올해 또 한 번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교통사고로 자식을 먼저 마음에 묻었다. 할아버지가 백운장학회에 그동안 모은 연금을 기탁하겠다는 뜻을 굳힌 것도 이 시기부터라는 게 매제 서정만 씨의 설명이다.

조태규 할아버지는 힘겹게 “진작부터 헐라고 했는디 이제야 허게 돼 미안하다”며 “마음이 흐뭇하고 홀가분하다”고 겸연쩍어 했다. 어르신은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작은 돈이 커 가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순간 주변에서 어르신의 방문소식을 듣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할아버지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던 문화홍보실 탁형도 씨의 눈에도 물기가 번졌다. 다른 공무원들의 눈에도 눈물이 아른거렸다.

전달을 마치신 어르신은 곧장 “바쁘실 건디 그럼 이만” 하고 허리를 일으켰다. 대접한 녹차의 열기가 아직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짧은 시간이다.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시장을 오래 잡아둘 수 없다는 이유다.

어르신이 자리를 뜨자 이 시장도 따라 문을 나섰다. 이 시장은 엘리베이터 있는 곳까지 배웅하며 아름다운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