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사랑
까치밥 사랑
  • 광양뉴스
  • 승인 2009.12.3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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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은 감을 딸 때면 으레 몇 개를 남겨두곤 했다. 남겨둔 감을 까치밥이라 했다. 까치밥. 참 예쁜 이름이다. 먹이가 없는 겨울, 까치가 얼마나 힘들까? 라는 측은함이 그 단어 안에 담겨져 있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생명 있는 것은 귀히 여겼던 조상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농부들은 들판에서 밥을 먹기 전 “고수레~”를 외치며 몇 숟가락의 밥을 던지곤 했다. 풍년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가 컸지만 들판의 짐승이나 벌레들과 먹이를 나누는 뜻도 깃들어있다. 뜻있는 이들은 짚신도 듬성듬성 삼았다고 한다. 산길을 걸을 때 벌레들을 밟을 경우를 대비해서다.
동물에게 그러할 정도니 사람들에게는 오죽 했을까?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연례행사로 보릿고개를 겪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들 변비를 앓았다. ‘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 라는 말이 생긴 연유다. 그렇게 가난했음에도 우리 조상들은 더 가난한 이의 살림을 헤아려, 나누고 보살피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추수가 끝나면 동네사람들은 수확이 좋질 않아 낙담해 있는 사람의 집 울타리 너머로 먹을 것을 던져두곤 했다. 받는 이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한밤중에 그렇게 했다. 거지가 오면 뜨거운 밥을 새로 지어 먹여 보낸 이들도 많았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던 집안 어른들이 떠올려진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대부분이 도시에 살다보니 감나무 보기가 힘들다. 어린 아이들은 까치밥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고수레’라는 말은 더더욱 모른다. 단절과 불통의 상징인 아파트만 즐비한 세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입시의 굴레에 매어 한밤중까지 학원가를 서성거리니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느낄 기회가 아예 없다. 
연말연시가 되니 새삼 배려해주고 같이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아쉽다. 올해가 가기 전, 혹은 새해가 시작된 후 모두들 어려운 이웃을 한번쯤은 찾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데리고 양로원이나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가보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교육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파트 입구에는 감나무를 한그루 심던지 아니면 홍시 몇 개가 가지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조형물을 만들어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오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저게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 때 까치밥 사랑 이야기를 건네주면 어떨까?  말하는 이나 듣는 이의 입에서 미소가 흐르고 그만큼 세상은 더 따뜻해질 것이다.
서종식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