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는 사회
책임지지 않는 사회
  • 한관호
  • 승인 2010.01.22 10:34
  • 호수 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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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대한 추억을 상기 할 때면 꼭 기억나는 이가 있다. 안 하사, 나이는 필자보다 한 살 아래인데 군대를 딱 일주일 먼저 온지라 계급사회인 군대에서는 필자가 영락없이 소위 ‘직속 쫄따구’ 였다. 위로 층층이 고참들뿐이고 동향인지라 우리 둘은 친밀하게 지냈다. 그는 키는 자그만 했으나 훈련, 구보 등에 똑 소리 났으며 운동을 잘하고 성품도 온화하여 사병이나 하사들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어느 해 겨울, 동계훈련을 나갔다. 분대별로 땅을 파고 참호를 만들어 생활했다. 한 겨울이라 영하의 날씨였으나 싸리로 만든 깔개 위에 메트리스를 깔고 벽은 볏 집을 엮어 만든 이엉을 두른지라 참호 속은 안방처럼 훈훈했다. 힘든 훈련이 끝나고 참호로 돌아와 방독면 깡통에 끓여 먹던 꿀 맛 같던 라면에 소주 한 잔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들판에서 2주차가 지나가던 주말, 오전 훈련이 끝나자 피엑스 차량이 도착했다. 마침 월급에 보너스까지 지급된지라 우린 두툼한 지갑을 털어 초코파이 등 간식거리를 넉넉히 샀다. 하사 중에서도 분대원들을 지극히 아꼈던 안 하사는 제법 거금을 들여 소주 한 상자를 사 저녁에 먹자며 분대 참호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점심을 기다리던 병사들이 무료하자 소주를 먹고 노래 가락을 뽑았다. 중대장이 이 광경을 목격했고 당직사관인 중사가 혼쭐이 났다. 이 일로 기분이 상한 중사가 중대원 전체를 집합을 시키더니 문제의 분대원들에게 얼차려를 주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안 하사가 얼차려를 받는 분대원들에게 ‘동작 그만’ 하더니 자기가 술을 사주었고 궁극적으로 통솔을 잘못해 생긴 일이니 자기가 책임지겠다며 나선 것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하사들을 끼고 돌던 중사가 그를 제지했으나 안 하사가 계속 자기 책임론을 우겼다. 화가 솟구친 중사가 몽둥이로 안 하사 엉덩이를 타작했다. 그는 한 참 동안 매를 맞다가 기절해 의료 차량으로 업혀갔다.
그날 저녁, 안 하사 분대원들은 동네로 닭서리를 나가 닭죽을 끓여 분대장을 위로했다. 안 하사의 이런 성향은 제대할 때 까지 계속됐다. 외출을 나갔던 분대원의 귀대 시간이 늦어도 자기 책임이라며 매 타작을 맡아했다. 자신의 분대에 관한 모든 책임을 도맡는 안 하사를 두고 군대 체질이라며 ‘말 뚝’ 박으라고 유혹하는 장교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일 아닌가.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계급장은 폼으로 달아주는 게 아니다. 지휘의 권한과 책임의 의무를 동시에 지는 게 이치다. 그럼에도 어디 군대란 게 그런가. 갖은 아부를 다해 남 한 번 나가는 특별 휴가를 두 번 세 번 나가는 병사. 어려운 일만 생기면 하급자에게 떠넘기기 등 등 잔 머리 굴리기, 눈치 백단 고수로 거듭나는 군대 생활이다.       

뜬금없이 안 하사가 생각난 건 서울 경찰청장 행태를 보면서다. 국민 추모제가 끝나자마자 덕수궁 대한문 앞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강제로 철거됐다. 시민들이 49제 때 까지만 그대로 둬 달라고 했으나 영정이 구겨지고 천막이 뜯겨 나갔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자 이 양반 한다는 말씀이 ‘일부 의경들의 실수’란다. 경찰 간부가 추모장 철거를 직접 진두 지휘하는 동영상이 있음에도 민주당 지도부 항의를 받은 서울 경찰청장은 애꿎은 전경 탓으로 돌리며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군 복무중이 아니었다면 우리와 같은 추모객이었을 뿐인 그들, 그들은 필요할 때 만 써 먹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생각을 가진 인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누구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이가 없다. 외신들은 정치 보복을 보도하고 검찰 책임을 추궁하는 시민들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검찰은 ‘수사 정당성’을 항변하고 청와대와 여당은 묵묵부답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에게 검찰과 맞장구쳐가며 견딜 수 없는 치욕감을 주었던 언론도 자성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500여만명에 이르는 국민들만 ‘네 탓이오’라며 자책했다.
한국 특유의 정서, 세월이 흘러가면 모두 잊혀 지겠지만 기다리는가. 이 글을 마무리 하려는 데 임채진 검찰 총장이 사표를 냈다는 속보가 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속죄 양 하나로는 쉬이 그칠 것 같지 않다. 그가 죽음으로 소망했던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꼼꼼히 따져 묻고 책임 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