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보다 황 면장으로 더 유명
기자 보다 황 면장으로 더 유명
  • 한관호
  • 승인 2010.01.22 11:07
  • 호수 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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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신문 기자들(2)- 황민호
한국에서 언론 밥을 먹는 사람 치고 옥천신문을 모르는 이가 없다.
충북 옥천군, 인구 5만여명에 불과한 이 시골에서 발행되는 주간지가 유명세를 탄 건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이 벌어지면서다. 흔히 대통령만큼이나 힘이 세다고 하는 조선일보와 맞짱을 뜨다니. 그것도 직원이라야 고작 10명에 불과한 옥천신문이 거대 언론에 한 판 하자고 나섰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헌데 조선일보가 변방의 참새가 우짖는 정도로 치부해버렸는지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운동은 그때까지 어떤 언론운동 단체조차 절독 이라는 구체적인 운동으로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던 터라 언론계 반응은 대단했다. 이 운동을 계기로 옥천에서 해마다 광복절 무렵 언론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그 옥천신문사 편집국장이 황민호이다. 씨름 선수 황대웅을 연상시키는 몸, 덩치에 비해 연신 터지는 웃음은 의외로 아이 웃음이다. 충남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옥천신문에 입사했다. 동기생들이 서울로 또는 일간지나 방송국을 바라볼 때 그는 유일하게 지역 언론을 주시했다. 평소 지역공동체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장호순 교수가 쓴 ‘작은 언론이 아름답다’는 책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 지역 언론의 대부로 알려진 장호순 교수는 이 책에서 언론학계가 별로 주목하지 않던 지역 언론의 역할, 국내외 지역 언론의 사례 등을 제시하며 지역 언론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대전이 집인 그는 옥천에 방을 얻어 자취를 했다. 지역 신문 기자는 24시간, 지역과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산으로 들로 군청으로 뛰어 다니며 옥천군민들과 부대꼈다. 지역민들의 삶과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한 눈에 들어왔다. 무엇 보다 기사가 나가면 즉시 반응이 와 신이 났다. 기사의 논조에 대한 이의 제기에서 부터 오, 탈자까지 지적하는 독자들의 반응에 지역 언론의 묘미를 느꼈다. 그러면서 신문은 기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만드는 것이란 걸 배웠다. 대학 4년 동안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그것도 돈까지 받으며 배웠단다.

옥천읍에서 다시 40여분 거리에 있는 청산면으로 이사를 했다. 읍 보다 도시 문화가 덜 베인 더 작은 공동체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기자 생활을 하는 틈틈이 청년들과 어울렸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청산초등학교 도서관을 야간에도 개방해 학생은 물론 주민들도 자유로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사서로 나섰다. 그 무렵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화제였다. 황 기자가 이를 지나칠 리 만무했다. 희망의 도서관 건립 공모에 당선, 1억 원을 받아 청산초등학교 도서관을 새롭게 꾸몄다. 책도 다양하게 구입했다.
그러자 이웃 안남면에서도 황 기자에게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다할리 없는 그, 도서관 건립 추진위를 구성하고 벼룩시장을 열었다. 이때 모은 쌈짓돈으로 추진위는 전국에서 이름깨나 있는 도서관들을 견학하며 정보를 모았다.

황 기자는 지역신문발전위에 기획취재를 신청, 국내외 모범 도서관들의 운영 사례를 취재했다. 그리고 국립도서관에 작은 도서관 건립 기획서를 올려 2억원을 받았다. 옥천군에서도 3천만원을 내놓았다. 청산면에 이어 안남면에도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의 도서관이 생겼다. 이 모든 게 뒤에서 알게 모르게 뛴 황기자의 머리와 다리품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이때 생긴 황기자의 별명이 ‘황 면장’이다. 

또 다른 일거리를 찾던 그에게 콩이 눈에 들어왔다. 주민들은 콩 농사를 제법 많이 짓는데 제다 내다팔아 소득이 높지 않았다. 두부공장을 세워 부가가치를 높이자고 농민들을 부추겼다. 순전히 옥천 콩으로만 만들면 군민들이 믿고 사 줄 것이라고. 그렇게 옥천두부공장이 섰다. 농촌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국을 다니며 성공 농업 사례를 취재, 보도하고 이들 농업 전문가들을 불러 직접 강의, 토론하는 자리도 만들었다.

그런 황 기자가 얼마 전 옥천신문을 그만 두었다. 충남대 대학원에 진학, 언론 공부를 더 할 참이다. 지역신문에 대해 제대로 알고 강의하는 전문가가 없다. 그가 언론 공부를 더 해보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지역신문 기자는 주민들에 비해 정보력이 높고 사회적 영향력을 가졌으며 주민과 행정의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 황민호, 기자로서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 운동을 펼치는 풀뿌리 기자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