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선거 출마자들에게 고한다
지자체 선거 출마자들에게 고한다
  • 한관호
  • 승인 2010.01.28 10:06
  • 호수 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섬에서 가난한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공부를 잘해 고등학교는 창원으로 유학을 갔다. 1980년대 대학에 진학한 그는 자신의 보장된 미래를 닦는 공부 대신 학생 운동에 투신했다. 군부독재가 판치던 시절, 깨어있던 실천가였던 그는 여느 활동가들처럼 감옥이라는 정해진 길을 가야했다. 불온한 시대에 불온했던 그는 2년여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리곤 고향으로 돌아가 신문사에 몸담았다. 그가 편집국장이었을 때 필자는 신입기자로 입사했다.

7년여 한 솥밥을 먹었다. 제법 긴 시간을 동거동락하며 지켜본 그는 참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신입기자들이 초고를 쓰고 나면 옆에 안쳐놓고 기사를 일일이 고쳐주었다. 그런 다음에야 자신의 기사를 쓰느라 마감 날이면 언제나 날밤을 세우기 일쑤였다. 그는 천상 신문쟁이였다. 군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 생기면 끈질기게 추적하고 한번 물면 놓는 법이 없었다. 어떤 압력이나 로비에도 굴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독하다 소리 듣는 기자다운 기자였다.  

그렇게 강단 있고 헌신적인 한편으로 감성이 넉넉하고 인정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느 술좌석이던 주머니에 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그다. 독서와 영화와 음악을 즐겨하는 문화인이었다. 무엇보다 신념이 투철한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대학생 때 먹었던 마음 그대로 초지일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평등한 세상을 꿈 꿨다. 그랬기에 신문사의 편집국장이면서도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자신의 당파성을 분명히 했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수구 기득권 정당이라고 비토하며 한나라당에 날을 세우던 그가 내 놓은 입당의 변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신문사 경영이 어려워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감수하겠다고 호언했단다.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지키려 하는 신문사는 누구를 위한 어떤 신문사일까.
뜬금없이 후배가 생각난 건 다가오는 6·2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유행처럼 번지는 정치인들의 말갈아 타기를 보면서다.

특히 대전, 충남에서 정치인들의 변신이 연일 지면을 장식한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오면서부터 한나라당을 탈당해 선진당에 입당하는 기자회견이 줄을 잇고 있다. 세종시와 관련해 지역민심이 요동을 치자 한나라당으로는 당선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모양들이다.  

헌데, 한나라당이 싹쓸이한 충남, 대전 자치단체장들 중 딱 한사람 무소속이었던 당진 군수는 거꾸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충남 민심과는 정반대로 가는 그의 변신이 화제였는데 항간에는 수사기관에 무언가 꼬투리가 잡힌 게 아니냐고들 한다. 

그렇게 정치인들이 자의적 또는 억지춘향으로 팔색조가 되어가는 풍경이 한 해의 들머리를 스산하게 하는데 한 일간지 보도가 근심을 더한다.

세계일보는 지난 10년간 치러진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역의회 의원 재, 보궐 선거가 무려 721건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1993억원이란 천문학적인 선거 비용이 들었단다. 더구나 재, 보선 10건 중 무려 8건이 당선 무효나 비리, 또는 금배지를 비롯해 더 큰 완장을 차려는 이들의 중도하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니 지자체 선거가 끝나면 수 천 억 원의 혈세와 행정력을 낭비하고 정치 염증까지 유발하는 재, 보궐선거는 또 얼마나 생기려나 싶다. 고백 하거니와 필자 또한 한 때 기초의원 출마를 생각했었다.

헌데 가장 우군이어야 할 아내가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그 논리가 참 자명했다. 첫째, 군 의원이 되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공부해왔냐고 물었다. 둘째, 선거에는 큰돈이 들어가는데 자금은 준비됐나, 남의 돈으로 선거를 하려는 건 나뿐 짓이다. 셋째, 자신은 가족이 가장 소중한데 가족이 대중들의 안주거리가 되는 건 용납 못한다. 하니 선거를 하려면 이혼하고 해라. 넷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선거법대로 하겠나. 이런 아내의 치도곤에 두 손 들고 말았다. 그렇지만 기실 필자 또한 부끄럽게도 기초의원이 되기 위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던 게 출마 운운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요인이었다. 다가오는 6월 2일 지방자치 선거, 광양의 일꾼으로 나서는 후보자들에게 아내가 필자에게 던졌던 질문을 돌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