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 없는 관광 전략, 스토리텔링의 ‘위력’
비수기 없는 관광 전략, 스토리텔링의 ‘위력’
  • 이성훈
  • 승인 2010.12.06 09:11
  • 호수 3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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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관광객 끊이지 않는 이탈리아 베네치아ㆍ베로나


이탈리아 해상 도시인 베네치아(Venezia).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로 불리는 이곳은 한때 아드리아해와 지중해의 여러 섬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해상 제국이었다. 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상인 마르코폴로의 고향이며 베니스 영화제와 가면 축제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주로 운하ㆍ예술ㆍ건축과 독특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일 년에 약 1천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베네치아의 인구는 6만 여명. 주민 대다수는 관광업과 유리ㆍ레이스ㆍ직물 생산 같은 관광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 베네치아에 있는 많은 운하는 118개 섬 사이를 이어주는 수로역할을 한다. 이 섬들 사이로 중심 수로인 그란데 운하가 2개의 넓은 만곡부 주위를 흘러 도시를 통과해 관광객들에게는 낭만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베네치아 건축물 또한 다양한 양식으로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베네치아의 건축물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아랍ㆍ비잔틴ㆍ고딕ㆍ르네상스ㆍ바로크 양식 등이 모두 나타난다. 베네치아의 사회ㆍ정치 중심지였던 산마르코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으로 손꼽힌다.

베네치아, 일 년 내내 축제의 도시

베네치아는 1년 내내 축제가 열리며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신년회를 비롯해 전통축제, 미인선발대회, 여름축제, 종교축제, 곤돌라축제, 영화제 등 계절별ㆍ주기별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매년 2월에 열리는 가면축제인 ‘카니발’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손꼽히며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카니발은 12일 동안 열리는데 이 기간 중 노벨상 수상자 강연, 세계적인 예술가 초청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세계의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카니발 기간 중 베네치아가 거둔 경제적 효과는 무려 4천만유로(한화 620억원)다.

베네치아는 18세기 이후 명맥이 끊겼던 가면축제를 지난 1979년 복원시켰다. 당시 베네치아 상인들이 가면 축제를 통해 지역경제 발전을 꾀하자는 여론이 제기됐다. 이에 베네치아시는 여론수렴을 거쳐 ‘카니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게 됐다. 축제 개최시기는 비수기인 2월로 선택 관광객 분산 효과는 물론, 일 년 내내 관광객을 끌어 모으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축제, 행정력이 아닌 전문가에게 맡겨라

베네치아의 행사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베네치아시 공무원들의 경험과 상상력만으로 축제를 이끌어 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소매치기를 비롯한 범죄의 증가, 교통체증, 주차문제, 관광객들이 소문난 장소로만 집중되는 현상 등이 해마다 되풀이 된 것. 베네치아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관광 기획 전문가 집단을 조직했다.

공무원들은 기본적인 행정 서비스에 전념하고 관광 특히 각종 축제와 관련된 업무는 관광 기획 전문가 집단에 맡기게 되는데 베네치아 마케팅과 이벤트 사업을 전담하는 기구인 ‘SPA’가 그 조직이다. SPA는 3년 전 시청 주도하에 탄생했다. SPA는 현재 전에는 시에서 직접 주관해 행사들을 진행했었는데 이제는 이 기관에서 모든 것을 주관해 운영하고 있다. SPA는 카니발을 비롯해 신년 행사, 가톨릭과 연관된 종교행사, 예수 승천행사, 곤돌라 경주 행사 등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장 루카 S.P.A 디렉터는 “SPA가 관광을 기획하면서 수익성, 행사의 질, 관광객 수가 엄청나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시청에서 관광을 주관했을 때는 매년 시가 입찰을 통해 업체를 뽑아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매년 담당하는 업체가 달라져 일관성과 비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업체를 선정해 우리가 진행 중인 것이다.

장루카 디렉터는 “우리는 베네치아 지방정부와 9년 계약을 맺고 행사를 기획하고 치르고 있다”면서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그리고 성과가 나도록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공무원들로선 해내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실천에 옮긴다”고 덧붙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없다’ 스토리텔링의 파워

문학과 오페라의 도시 베로나는 이탈리아 북구 평야에 들어서는 곳에 위치해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교통의 요지, 상업 중심지로 발달했으며 로마시대의 원형 극장인 아레나와 아디제 강의 다리 등이 남아 있어 도시의 역사성을 더해준다.



‘베로나’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13~14세기에 겔프당과 기벨린당이라는 두 정당 사이의 투쟁이 있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각각 두 정당의 대표 가문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베로나에는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구애를 했다는 줄리엣의 집도 있다.

줄리엣의 집을 직접 눈으로 본다면 스토리텔링의 위력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실감하게 된다. 줄리엣 집 앞 정원까지는 무료입장이지만 줄리엣이 로미오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2층 발코니를 가려면 우리 돈으로 1만 2천원(8유로) 정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줄리엣의 집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200만명 정도. 이중 발코니에 들어가는 관광객은 20만명이 조금 넘는데 대부분 여성이 들어간다. 발코니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구애를 받노라면 관광객들은 어느새 줄리엣이 된 듯 한 환상에 빠져 든다.  평범한 2층 발코니인데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기억하는 관광객들은 1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라도 2층 발코니를 찾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브리엘레 렌 베로나시 문화부 담당관은 “줄리엣은 소설 속의 여주인공 일뿐 실제 인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담당관에 따르면 2차 대전이 끝난 뒤 베로나 시청의 한 공무원이 베로나 시내의 한 집을 골라 ‘줄리엣의 집’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당시 이 집이 장차 베로나는 물론, 사랑을 상징하는 징표가 될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틋한 순애보를 책, 영화 등을 통해 본 관광객들이 직접 이 집을 구경하기 위해 찾고 있다. 가브리엘레 담당관은 “줄리엣의 집은 세계 어디에서도 모방할 수 없고 가져갈 수 없는 곳, 그야말로 베로나의 자랑거리가 됐다”며 “영원한 사랑을 믿는 성지로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재 보존과 활용이 ‘경쟁력’

베로나에는 또 다른 관광 요소가 있는데 바로 ‘오페라’다. 베로나 시청 앞에는 로마의 콜로세움 다음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원형극장인 아레나가 있다. 로마시대 검투장으로 이용됐던 아레나는 현재 시에서 유적과 오페라 공연 등을 관람할 수 있는 극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10년 전부터는 오페라 극장으로서의 용도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 연극제나 록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과 뮤지컬 등이 열리며 공연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레나는 지난해 72회에 걸쳐 공연이 진행됐고, 이 중 오페라 상영이 49이다. 오페라 이외에 음악과 관련된 공연에만 3만유로(4650만원)의 사용료를 받고 있으며, 이는 시의 재정운영에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페라 축제는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아이다가 초연된 것을 계기로 매년 7∼8월에 아레나에서 열린다. 그리고 오페라 축제에는 연간 5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다.

베로나는 지역의 역사가 기록된 이후의 모든 유적을 보유하는 것은 물론, 이를 보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베로나는 오래된 유적,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오늘날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와 함께 이탈리아 관광 명소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베로나시 가브리엘레 렌(Gabriele Ren) 문화부 담당은 “시는 지난 2000년 이후 베로나의 관광마케팅 전략을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라며 “특히 ‘오페라의 베로나’, ‘사랑의 베로나’ 뿐만 아니라 이를 다른 아이템과 접목해 훨씬 가치 있는 도시로 융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