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윤동주 백일장 사생대회 수상작
제4회 윤동주 백일장 사생대회 수상작
  • 광양뉴스
  • 승인 2011.06.27 09:52
  • 호수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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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고등부 - 금상

나의노래(나를 담아낸 6월의 노래는)
유수연(제철고 1)

푸르른 녹음이 짙은 초여름의 한 가운데에 마주섰다. 숱한 바람을 이겨내고 수 없는 추위를 견뎌낸 나무들은 오늘도 저마다의 이름 없는 노래를 부른다. 조금의 변화에도 제 모습을 간직한 노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흘러들기 바쁘다. 내 삶에 녹아든 노래는 어느새 그 곡조를 완성해 나를 금세 흥얼거리게 만든다.

3년 전에도, 나를 고뇌의 방에 밀어 넣었던 1년 전에도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닦아낼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의 문을 열고 빛을 잃었던 내가 감히 나를 노래 할 수 있었을지.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입시의 기로에 서서 나 자신을 가뒀다. 그랬던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전에 없던 나로 변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는 건 또 한 번의 내 자신을 잃었다는 것과 같은 것일까?

곧잘 내 입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는 그 찰나의 기분에 따른 것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빗소리를 반주삼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나뭇잎의 흔들림을 박자삼아 목소리에 나를 담았다. 며칠 전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혼자 걷는 길은 누군가와 같이하는 것과 다른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노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불러주셨던 노래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노래를 머금었던 입을 닫았다.

그리고 몇 분을 그렇게 서있었다. 어렸던 나를 종종 데리고나가 밤하늘을 구경시켜주신 할아버지가 은연중 생각이 났던 걸까. 그리고 다시 흘러나오는 내 노래는 그 그리움의 기억을 더듬기에 충분했다.
노래는 내가 사는 인생을 대신해주는 대변자의 역할을 한다. 그리움, 행복, 슬픔 등이 묻어나는 노래는 누구나가 가질 수 없는 특권이다. 사람이 하루를 살면서 하늘을 몇 번이나 쳐다볼 수 있을까.

나는 하늘을 눈에 담을 만큼 여유를 가지고 살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눈물로 기억하는 하늘의 모습은 입시의 막바지에서 가방을 짊어지고 어느새 지쳐버린  내 자신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던 길 위에서였다.

땅만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고 쳐다본 하늘은 해가지는 석양에, 태양의 마지막 빛에 물든 노랗고 붉은 구름이 있던 하늘이었다. 그 자리에 서서 그냥 펑펑 울었다. 하늘이 들려주는 고요한 노래 때문이었을까. 정말 내려놓고 싶은 순간들은 흘려보냈다. 지금 생각하는 그 때의 내 노래는 내 자신을 위해 불러줄 수 있는 노래였던 것 같다.

나는 하늘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한다. 마치 하늘이 내 노래를 들어주는 청중이라도 되는 양 구름을 보며 부른다. 부르다보면 내가 노래가 되어 내 마음을 끌어내 목소리에 나를 담게 된다. 그러고 보면 노래는 수채화와 참 많이 닮았다. 내 자신을 그려내는 것도, 덧칠하지 않아도 가만히 두고 보면 그대로의 모습이 참 예쁜 게 수채화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나는 오늘도 노래를 부른다. 파랗고 오묘한 구름을 배경삼아 17년이라는 흐름을 머금은 그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덧없는 깨끗함으로 물들어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6월의 노래는 오랜만에 겪는 여유로움을 닮은듯하다.

진한녹색의 나뭇잎과 함께하는 나의 6월의 노래는 언젠가 그 마지막을 노래 할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나의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내 인생의 끝에 서게 되는 날, 나는 내 인생의 곡선을 닮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꼭 나를 닮은 내 노래를 부를 날 위해 나는 하늘과 함께, 바람과 함께, 짙은 나뭇잎과 함께 6월의 노래에 나를 담는다.


백일장 중등부 - 금상

나의 노래
정미라(제철중 1년)

나는 드라마를 참 좋아한다. 드라마의 장면 장면을 보다 보면, 참 많은 배경음악들이 나온다. 그 배경음악을 듣는 나는 드라마에 취해 울고, 웃고, 감동하곤 한다. 그러다 며칠 전 문득, 내 인생에도 배경음악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좋은 성적이 나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했던 순간에 울려 퍼지던 밝은 멜로디, 그리고 아빠가 아프셨을 때 나지막이 들려오든 조금은 슬프고, 부겁던 노래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14살 밖에 안 된 나에겐 삶, 그리고 인생이란건 배우지 않은 수학문제 같이 복잡하고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순간들에는 마음 안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노래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노래들이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 녹아있는 ‘나의 노래’라는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전화를 받았던 날, 엄마가 울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꼭 품고 자꾸만 우셨었다.

난 그때 무지 어려서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난 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잘 몰랐지만, 작은 마음에서 울리는 슬픈 음악을 분명히 들었다.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난 외할아버지를 향한 너무나도 애틋하고 깊은 엄마의 사랑이 절실히 녹아내린 인생의 첫 노래를 가슴에 소복이 담았다.

4, 5년 전 처음으로 미국 땅에 발을 디뎠을 때, 그리고 처음으로 친구들을 사귀었을 때도 난 왠지 밝기도 하지만 긴장감이 넘치는 멜로디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타국에서 느낄 수 있었던 봄날의 햇살마냥 따뜻했던 아이들의 미소와, 인생에 불쑥 찾아온 짧은 소나기었지만 내 마음 구석 구석까지 촉촉이 젖힌 빗물이 이루는 경쾌한 노래였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나의 노래의 하이라이트였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참 걱정 없이 행복했던 짧고도 길었던 1년 이였기 때문이다.
화장한 봄날씨에 산책을 하다가 살짝 돌린 눈에 들어온, 꿋꿋이 자라나고 있는 앙증맞은 잔디와 꽃을 보고 맑고 맑은 봄의 노래가 떠오르는 사람은 나뿐일까. 그 맑은 멜로디가 나의 노래를 완성시켜줄 것만 같다.

앞으로 내가 채울 ‘나의 노래’에 남은 부분들은 어떤 어둡고 밝은 멜로디로 채워질지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조각공원에 보이는 푸른 소나무같이 한 없이 푸르고 멋진 그런 노래가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생을 마감할 날이 왔을때 내 인생을 꾸밈없이 노래하는 그 음악을 찬찬히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일장 초등부 - 금상

달   력
조  은(광양동초 5년)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 되었다고 방송에서 들었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시인 윤동주님을 만나러 가는 오늘에도 비가 온다는 소식에 속상해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거짓말 처럼 비가 그치고 깨끗해진 세상이었다. 지난해 가을 백일장이 열렸을 때도 그렇게 내리던 비가 뚝 그쳐 깨끗해진 풍경이었는데 오늘도 역시 기분 좋은 시인과의 만남이 되었다. 아름다운 시인과의 만남을 축복해주는 연두 빛과 초록색 빛 속에서 나는 지금 윤동주 시인님과 만나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달력과 우정, 그리고 생일이다. 나는 그중에서 달력이란 제목을 선택하였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달력이 있다. 우리집에도 방과 거실, 부엌, 화장실에 달력이 있다. 그 달력은 일년이란 시간과 함께 우리가족들의 곁을 지켜주는 달력이다. 우리 엄마에게는 메모장도 되고 일기장도 되고 가게부도 되며 우리가족들의 행사를 꼼꼼히 챙겨주는 중요한 달력이다.

할머니의 달력은 음력날짜가 크게 숫자가 적힌 달력, 그리고 아빠는 멋진 풍경화가 그려진 달력이며, 오빠 방에는 영어로 꾸며진 달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제일 중요한 보금자리 거실에는 내가 만든 우리가족의 큰 달력이 지키고 있다. 정확하게 4년전부터 직접 만든 달력이 우리 거실을 지키는 사연이 있다.

내가 1학년이고 오빠는 4학년일때 아빠께서 대기업에 다니시다가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을 하시게 되었다. 갑자기 실업자가 되신 아빠께서는 공공근로에 다니시고 인력소에도 나가셔서 일을 하셨다. 저녁이면 힘들어서 지쳐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어린아이였지만 너무 슬퍼했던 기억이 생상하게 난다. 그때 아빠께서는 달력에다 표시를 해 두셨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돈을 받기 위해서였다. 어느날 오빠가 전지 한 장을 가져와서 달력을 만들자고 했다.

“은아, 우리 멋진 달력을 만들어서 아빠께 드리자, 스티커도 만들어서 표시대신에 붙이자.”
“왜, 달력을 만들어?”
“아빠께서 일하시느라 힘드시니까 우리가 아빠를 힘이 나게 해주기 위해서야.”
할머니와 엄마께서도 좋은 생각이라고 용기를 주셨다. 나는 색종이 접기를 하고 오빠는 그림을 그렸다.

스티커는 만들기는 어려워서 엄마께서 도와 주셨다. 달력제목은 “아빠 힘내세요.”라고 정했다. 집에 오신 아빠께서는 벽에 걸린 달력을 보시고 너무 좋아하셨다.
“내가 힘들게 일한 보람이 있구나. 고맙다. 너희들이 스티커를 직접 붙여주겠니?”
오빠와 나는 벌떡 일어나 스티커를 붙이고 우리가족들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엄마께서는 “당신 이제 어깨가 더 무거워 지셨네요. 이 달력 칸을 다 채우려면 더 힘내야 겠어요.”
얼마후 아빠께서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셔서 돈을 받기 위한 스티커는 사라졌지만 대신 엄마께서는 칭찬 스티커를 채워 주시면서 용돈의 액수를 정하신다. 지금도 아빠께서는 우리집에 있는 달력중에 오빠와 내가 만든 달력을 제일 좋아하시고 아껴 주시며 소중하게 여기신다.

지금 생각해보면 달력은 우리 가족들에게 많은 용기와 중요한 의미를 주었다. 그때 처음 만든 달력은 조금 실력이 모자란 달력이었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만든다. 5번이나 만든 달력 속에는 우리가족의 행사와 여러 가지 사진도 들어가고 좋은 속담과 영어단어도 적혀있다.

해마다 달라지는 내 달력 꾸미기의 솜씨를 보고 우리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수준급이라고 칭찬해 주신다. 나는 용기를 내어서 우리집의 달력은 계속 만들고 싶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달력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힘이 되어 주고 달력에 적힌 숫자를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나도 세상에서 쓸모 있는 달력처럼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