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만원 밖에 없다던 그분
29만원 밖에 없다던 그분
  • 이성훈
  • 승인 2012.02.06 09:39
  • 호수 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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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면


‘염치 : 대한민국 부끄러운 보고서’
(나무와 숲/김학희 지음)

‘염치’(廉恥)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 염치없게 정말 뻔뻔하네” 등 상대방을 꼬집거나 지적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사전적으로 염치는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무엇을 잘못했을 때 그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의 눈과 연결돼 있는데다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처벌할 수도 없고 스스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우리는 뉴스와 신문을 통해 염치없는 인간들을 수없이 보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의 절반은 염치없는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 ‘염치 : 대한민국 부끄러운 보고서’는 염치를 모르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언론인인 저자는 책속에서 염치없는 인간들을 사례하며 그들의 실태를 냉철하게 꼬집는다.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며 끝까지 버티고 있는 전직 대통령, 아들의 복수를 위해 조직폭력배 수준의 보복 폭행을 자행한 재벌 회장, 논문조작ㆍ표절ㆍ중복게재ㆍ재탕을 둘러싼 논란, 학력 위조사건 등 경종을 울렸던 염치없는 자들을 나열하며 부끄러운 우리사회를 낱낱이 까발려놓고 있다.

반면 책 후반부에서는 이런 사례와 반대로 한평생 남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며 염치없는 자들을 더욱더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책 6부와 에필로그에서는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은 두 할머니와 소록도병원에서 40년 넘게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오스트리아 수녀들의 삶을 통해 진정 염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수녀는 1959년과 62년 한국에 들어와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다. 두 수녀는 이제 70이 넘어 더 이상 봉사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2005년 11월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두 수녀에게 국가와 단체에서는 상을 주겠다고 수차례 설득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주는 훈장마저 거절한 두 수녀는 99년 생애 단 한번 상을 받게 되는데 그것 역시 30년 이상 함께 일해 온 직원의 간곡한 설득 끝에 받은 것이다. 상금 1억원 역시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두 수녀는 환자 기금으로 넣었다.

김춘희 할머니는 고아원에서 20년간 봉사활동을 해왔고 전세금도, 장기도, 시신도 모두 기증했다. 박영자 할머니는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평생 모은 1천만원을 기부했다. 열거한 두 할머니는 과거에 조그마한 잘못을 마음에 가다듬었다가 봉사와 기부로 자신의 염치를 고백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감정이 부끄러움이지만 이겨내야 할 대상이다.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것이 먼저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즉 ‘염치’를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재조명해보는 것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