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개선…1m60cm의 지방틀 만들다
장묘문화개선…1m60cm의 지방틀 만들다
  • 태인
  • 승인 2008.02.21 09:15
  • 호수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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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7년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육계를 떠난 필자는 이후 대한노인회 광양시지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장묘문화 개선’에 대해 피력한 바 있다. 그때가 2004년도인데 대한노인회에서 ‘자원봉사활동으로 존경받는 노인상’의 일환으로 원고를 모집했는데 필자의 ‘현 매장문화 장묘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 채택됐다.

필자는 2001년 2월 우리나라 장사법이 공포시행되자 그해 12월 문중들을 설득시켜 납골당 건립을 추진했다. 이는 90년대 후반 동남아시아 여행 중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를 둘러 보니 묘가 하나도 안보이는 것이었다. 안내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13억 인구가 매장을 하게되면 온 국토가 묘지로 변하기 때문에 국가가 강력하게 화장 문화로 바꿨다는 설명을 듣고 수긍이 갔다.

또한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공원으로 조성된 납골묘가 너무 잘 조성돼 있음을 간파하면서 우리도 저렇게 돼야겠구나 한 것이 비로소 2001년  에야 때가 왔다.
당시 광양시는 3개면에 1기씩 500만원의 보조를 통해 납골묘 시범지역을 조성했는데 때는 왔다 싶었다. 당시 문중 총무를 맡았던 필자는 여러차례의 문중 회의를 거쳐 결국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광양읍 제1호로 문중 납골묘를 탄생시켰다. 규모는 168위로 그때가 2002년 6월9일이었다. 흩어져 있던 문중 묘를 한데 모아 납골묘를 만들었으니 현행 매장위주에서 화장·납골문화로 유도하는 등 장묘문화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이같은 필자의 작은 노력은 문중뿐만이 아니라 특히 현대인들의 화장문화에 대한 주민들의 의식개선을 통해 화장문화 확산에 기여함은 물론 저렴한 가격으로 장기간 이용할 수 있는 쾌적하고 아늑한 납골시설의 제공으로 주민들의 공공복리 증진에 기여했다고 지금도 자부한다.

이는 매장위주의 장사문화를 화장 납골 문화로 유도한 것은 묘지의 국토잠식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장묘문화 개선과 시민들의 묘지에 대한 심려를 해소 시켜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사도 납골묘에 안치돼 있는 조상들께 문중들이 함께 지내기로 했다. 형제끼리도 부모나 조부 등 제사를 미루는 현대인들이 있는가 하면, 증조부모는 아예모시지 않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에 납골묘에 현 62명의 영위 외에 생존자 96명을 포함, 차례 항렬 나이 순으로 지방틀을 만들기로 중지를 모았다. 망자는 휘(諱)를 표기하고 생존자는 이름 표기를 안하는 대신, 사망 후에 휘를 표기키로 했다. 시제지방액자는 항렬자 순으로 문중들을 나열해 보니 1m60cm크기가 됐다.

올 추석에는 72위(位)의 조손간 영혼이 생존한 후손들과 서로 만나게 되는데 이른바 합제다. 제수 비용은 문중이 부담하고 후손들은 정성껏 참여해 기리면 된다.
김해김씨 ‘완’ 후손들의 제례혁신이 시작된 것이다. 광양시민들의 평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