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나라
따뜻한 남쪽나라
  • 태인
  • 승인 2008.02.21 09:23
  • 호수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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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나라 김세광 복향옥 부부의 귀농일기
 
지금은 한겨울인데도 날씨는 참 따뜻하다.
내가 사는 백운산 자락은 정말로 따뜻한 남쪽나라인가보다. 서울 같으면 겨울 한 철이 꽁꽁 얼어 붙은 날이 참 많았을텐데 이곳에는 그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 겨울에도 매서운 눈바람에 꺾이지 않고 푸릇푸릇한 상추가 텃밭에서 자란다. 그뿐 아니라 집 주변 곳곳에 심어진 동백이 빨간 꽃망울을 여미는가하면 길가에서 무리로 자라나는 남천의 빨간 열매들이 마치 화려한 겨울꽃인 양 아름답다.

한겨울 노지에서 자라나는 상추를 수확하고 가끔은 한가롭게 집 앞 마당에서 자라는 꽃들을 바라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곤한다.
출출해진 점심나절이면 고로쇠 약수로 담근 된장을 곁들여 텃밭에서 저절로 자란 상추쌈을 먹는 것이 이곳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 반찬이 많지 않아도 그대로 제맛을 내는 채소만으로도 식탁은 풍성해진다.
도회지 사람들이 유난히 집착하는 웰빙이라는 식생활도 이곳 처럼 맑은 물과 공기만 있다면 어렵지않게 누구나가 누릴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해본다. 산속에서 산다는 자체가 웰빙이며 상쾌함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주 가까이 서있는 백운산을 바라본다.
가끔은 산 중턱에  엷은 구름이 걸치기도 하여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만들어준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눈부시게 맑은 속살을 보이듯 환하게 자태를 뽐낸다. 때론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비가 흩뿌려지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 산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세상의 중심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며 자연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오지 않았던가 ?
산을 바라보면 생활에서 오염되었던 마음이 한층 깨끗해지고 아침 이불 속에서 망설임으로 뒤척이던 생각이 새로운 의욕으로 넘쳐난다. 뿌연 하늘에 소음 가득한 도회지에 비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못난이 키재기하듯 자연 속에 들어와있는 아파트를 더이상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

며칠 후면 우리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의 모임인 광양미협에서 그림전시회를 연다고한다. 아마도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서 전시회를 연다면 그것 또한 색다르고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 것 같다.
오늘도 레스토랑 곳곳에 화가들의 땀이 배인 그림을 걸 레일을 설치하고 길거리에 현수막도 준비했다. 전시회 제목이 “봄이 오는 길목”인데 제목의 이미지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느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봉강의 맑은 산, 계곡과 더불어 전시회가 일상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휴식이되고 위로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서 주로 하는 일이란 결국  사람들이 보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시시 때때로 꽃과 나무를 심고 바위를 옮겨 길을 만들고  무작정 흘러가는 물길을 다스려 작은 실개천도 만들어본다.
나무를 이용해 작은 테이블도 만들고 실개천에 놓일 다리도 만들어본다. 뭔가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기쁨은 자신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작지만 정성이 있고 정감이 가는 것들에 사람들은 반가워하기도 하고 놀라워하기도한다.
나이가 조금씩 들다보니 나로 인해 상대방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땀을 흘리며 정성을 들여 조금씩 만들어가는 이런 과정들이 점차 세월의 때가 묻고 견고한 뿌리를 내리면 그 때쯤이면 제대로 된 작품이 될 것으로 믿는다. 최소한 이 지역 사람들에게만이라도 편안한 쉼터가 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을 호흡하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새롭게 만들고 고치는 기쁨은 다른 어떤 성취감보다 크다. 앞으로의 목표는 살 집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다.
개울가에 터를 잡고 산에 있는 황토를 빚고 바위를 쌓고 온돌방에 굼불을 때어 누군가가 찾아와도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소망한다.
과연 그것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일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다보면 큰 도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새로운 터전인 이곳에서 나날이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은 아직 이곳으로 이사온 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아이들에게는
훗날 자연의 감성을 키우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싶다.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기 위해 도회지를 벗어났는데 이 또한 과도한 욕심이 아닐지 가끔은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