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이웃사촌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4.24 09:27
  • 호수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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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큰 언니가 상추랑 부추를 한아름 들고왔다. 가영이 할머니가 우리랑 나눠먹으라며 잔뜩 주셨단다. 작년에도 그랬었다. 그때는 어떤 분이 가영이 할머닌지를 몰라 길 가다 만났으면서도 감사하단 인사를 따로 못 드려 얼마나 죄송하던지. 후에 만났을 때에 두 마음에 대한 인사를 한꺼번에 드렸더니 내 손을 덥썩 잡으시며 걱정해 주셨다.

시골생활이 고생스러워서 어쩌냐며 손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꼭 친정엄마 같았다. 이사오기 전, 큰언니집에 놀러오면 늘 자랑하는 게 있었다. 하조마을 인심이었다. 식사할 때 우리는 반찬들에 대한 이력을 들은 후에야 젓가락을 들곤 했다. 이 호박이랑 오이는 설화네가 준 거고 이 겉절이는 선진엄마가 만들어왔고, 저기 쪽파는 가영이 할머니가 가져 오셨고… 이렇게 언니네 밥상은 하조마을 인심이 절반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와 생각하니 낯선 광양땅으로 이사오는 일이 수월하게 된 데에는 하조마을 인심이 큰 배경이 됐으리라 싶다. 원래 감동 잘하는 큰 언니지만 사흘이 멀다하고 현관문 앞에 놓이는 선물에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호박이며 오이, 배추, 무, 쪽파… 두릅이며 고사리, 단감, 홍시, 밤…(하조마을에 생산되는 대부분의 것들이 다 왔었으리라) 등 산타 처럼 살그머니 놓고가는 그 사랑에 이미 내가 전염됐었으리라.

우리는 마을 안에 사는 언니네와는 달라서 간혹 외로움을 탈 때가 있다. 게다가 모여사는 다섯 집중에 우리만 계곡 건너편이다. 다행히 우리집 앞을 지나야 갈 수 있는 밭들이 있어 마을소식도 듣고 서툰 시골살이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진수 할아버지는 커피를 좋아하시고 성훈이 아버지는 커피보단 잎새주 한 잔이 반가운 분이다. 그 분들이 주시는 선물에 비하면 너무 약소해서 부끄러울 뿐이다. 우리가 식당 한다고 반찬거리를 주실 때도 한아름씩이다.

지난해, 성훈이 할머니가 주신 고춧잎순, 열무, 배추 솎은 것들, 감자, 무 같은 것들이 손님들 상에 올랐고 진수할아버지가 갖다주신 빨간 앵두랑 옥수수, 고구마 들은 동하랑 하진이 간식거리로 환영을 받았다. 계곡 건너편에서 밭을 가꾸는 설화네도 일부러 고구마를 들고와 우리를 감동시켰다. 경수씨 어머니한테서는 표고버섯을 샀는데 덤으로 주신 게 더 많았다.
가게일이 바쁠 때 도와주러 오는 선진이네 언니는 빈손으로 오는 때가 없다. 지난해 가을, 성훈이네 언니는 나를 밭으로 부르더니 무가 묻힌 구덩이를 일러주며 언제든지 파다 먹으란다. 호미까지 나무에 걸어놓고 말이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는 설화 아버지랑 미나 엄마,아빠가 찾아왔다. 마을일로 상의할 게 있단다. 얼른 건너에 사는 성훈이 엄마,아빠한테도 전화를 해서 생맥주파티를 열었다. 장삿집이라고 손님들한테 누가 될까 염려가 많은 분들인줄 알았을까, 다행히 손님이 없었다. 덕분에 남편도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기분좋게 취했다. 오랜만에 갖는 즐거운 휴식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이장댁네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행운목 꽃이 피려하니 보러 오란다. 지금 막 올라오는 꽃몽우리가 하두 이뻐서 전활했단다. 흔히 볼 수 없는 일이니 카메라를 챙겨오라는 말도 덧붙인다. 늘 바쁘면서도 전화를 준 그녀의 마음이 참 고맙다.
행운목 꽃을 선물받은 것 이상으로 반갑고 행복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받는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