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했어도 즐거운 파티
체했어도 즐거운 파티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7.03 09:14
  • 호수 26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무래도 초저녁에 급히 먹은 닭죽과 맥주 한 모금이 얹혔나 보다. 내내 더부룩했던 속이 샤워를 하고나니 한결 편안해진다.    
낮에는 산에 있었다. 뒤늦게 매실 따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예약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산을 내려왔다. 살구처럼 노랗게 익어가는 매실이 안타까우면서도 얼마나 색이 고운지 연신 탄성을 지른다. 세상에, 그동안 그렇게 많이 땄는데도 저렇게 많으니 어쩌면 좋아…매실나무가 이렇게 많은 줄도 몰랐었다. 겨울에 고로쇠나무를 보고 놀랐듯이 또 매실나무 수와 열매 양에 많이 놀란다.

하조나라 때문에 매실 따는 건 못하고, 따오면 고르고 씻고 엑기스, 장아찌, 술 담그는 일만 했었다. 직접 따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깨랑 허리가 그렇게 아프다면서도 매실 따는 게 즐겁다던 큰언니를 이제야 이해하면서 한없이 미안해진다. 하루종일 일했다는 사실만 염두에 두고 “애 많이 썼어” 했는데 이렇게 한 알 한 알 따고 줍고 했구나 싶으니 얼마나 미안하던지…
성훈이 할머니랑 가영이 할머니한테 마무리를 부탁드리고 따놓은 매실을 실으면서 “아, 그냥 오늘은 매실 따는 것만 했으면 좋겠다” 했더니 남편은 또 어이없어 웃는다.
아이구, 저 철없는 마누라…하는 웃음이다. 말해놓고 나도 웃는다. 마을로 내려오다 포크레인을 열심히 움직이는 유리아빠를 보고 그가 우리를  봤던지 못 봤던지 꾸벅 인사를 전한다. 산촌마을 체험관 조경공사가 한창인데 그 분야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최고의 기술자란다. 마을로 조금 더 내려오니 가지런히 쌓여진 돌담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체험관까지 가는 길목을 단정하게 하느라 온 마을사람들이 며칠동안 작업 중이다. 어? 오늘 공사는 벌써 끝났나?

하는데 마을사람이 다 모여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이장님댁 언니가 닭죽을  끓이고 마을 여인들이 모여 상을 차렸단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 차에서 내렸다가 천하장사 조진국이장님 손에 붙들려 즐겁게 끌려간다. 손님오신대서 빨리 가야한다고 마다해하는 남편 목소리도 행복하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동네 어른들과 대면하랴, 싶어 그런 자리가 항상 반갑다.

퇴근하시던 큰형부와 멋쟁이 큰언니도 양복을 입은 채 마당 한쪽에 앉아 닭죽을 맛나게 들고 계셨다. “한동네 사니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너무 좋다” 큰언니가 행복하게 웃으며 말한다. “오늘은 먹을 복이 터졌네”. 누군가 또 한 마디 한다. 들어보니 아침에는 김화진약사님이 드링크를, 오후에는 내가 또 드링크를, 저녁에는 이장님댁이 닭죽을, 그 상에 올라오는 소주는 큰형부가 내신 것이다.

모두들 한 식구처럼 살갑다.(사실 이리저리 알고보면 하조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친인척이다. 그야말로 사돈의 팔촌까지 있다) 닭죽 한 그릇을 놓고 큰언니랑 같이 먹는데 산에 계신 성훈이 할머니랑 가영이 할머니가 걸리고, 하조나라를 혼자 지키는 옥경언니한테 미안해진다. 급한 김에 소주를 맥주잔에 받아 마신 남편의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든다. 나도 얼떨결에 맥주 한 잔 받고는 눈치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숨어 마신다. 손님 맞아야할 안주인이 술이라니…얼른 한 모금 마시고(우리 목사님 아시면 싫다시겠다) 닭죽을 후다닥 먹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기는데 남편이 한 마디 한다. “당신 아쉬워서 어떻게 해?”
피식 웃으며 내가 철없는 대꾸를 한다. “진짜…오늘이 휴일이었으면 좋겠네”

가게로 오자마나 남편은 바비큐가마에 불을 지피고 나는 손님상 셋팅을 하고 옥경언니는 반찬을 준비한다. 그리고 틈틈이 배송할 매실을 박스에 담아 테이핑을 하는데 예약손님이 들어오신다. 단골손님이 또 다른 분들과 함께 오셨다. 허둥거리는 우리를 보고 개념치말고 일하란다. 덕분에 손님맞이는 잠시 미루고 주방에 있던 요리사 옥경언니도, 늘 성실한 현대택배 아저씨도 같이 달려들어 주문량을 마쳤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