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싫다…
여름이 싫다…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7.17 10:00
  • 호수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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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 옷을 차려입는 남편의 움직임에 설핏 잠이 깨지만 몇 분 더 엎치락뒤치락 거리다 나중에는 화들짝 놀라 주방으로 달려간다.

남편이 외부 화장실을 청소하고 집주변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이, 나는 번갯불에 콩 볶을 만한 속도로 아침상을 차린다. 제일 잘 먹어야 한다는 아침을, 우리는 제일 간단히 먹는다.
국물이 없으면 절대 밥을 못 먹고 생선이 없으면 먹을게 없다고 생각하는 남편도, 여름이 되면서는 별 말이 없다. 썰렁한 ‘일식오찬’으로도 밥 두공기를 뚝딱 비운다. 아이들한테는 한없이 미안하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반찬 한 번 제대로 못해 주면서 아들한테 말은 폼 나게 한다. “편식하는 버릇, 이제는 좀 고쳐야하지 않겠니? 5학년인데…”

이렇듯, 내 기운을 빼서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여름이 싫다. 또 흐르는 땀을 얌전히 닦아낸다든지 지워진 화장을 고칠 여유가 내겐 없다. 그쪽에 워낙 재주가 없다보니 수습도 잘 안되지만, 장사를 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스타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것이다. 때문에 여름동안은 화장을 하지 않는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는 동네 슈퍼마켓도 가지 않던 내가, 봉강에 이사오면서 엄청 용감해진 것이다.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던 희망은 아무래도 몇 년 뒤로 미뤄야할 모양이다.

여름이 싫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하조나라 정기휴일이던 지난 월요일 아침(이제 8월까지는 휴일도 없다. 난 기절할 것이다).
손님맞이를 위해 가게 청소를 한다거나 아침시장에 다녀와야 하는 등의 일이 없어 조금은 여유로운 아침에, 하진이를 형부한테 인계하고 들어오다 계곡에서 쓰레기를 줍는 남편을 발견하고 멈칫한다. 평소 같으면 미안한 마음만 갖고 그냥 달려 들어와 집안일들을 할텐데,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가 미안한 마음을 두 배로 들게 하면서 발목을 잡는다.
커다란 봉투랑 고무장갑을 챙겨서 남편이 있는 곳보다 더 아래쪽 계곡으로 내려간다.
으악~! 처음 보는 모양은 아니지만 새삼스레 화가 난다. 그리고 금세 우울해진다. 왜 사람들은 즐겁게 놀고나서 이토록 지저분하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걸까. 깨끗한 계곡한테, 옆사람이나 다음 사람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다음에 왔을 때 그들이 보도록 그냥 둬버릴까…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고 협박할까…
어차피 우리 땅을 지나야하는, 계곡으로 내려오는 입구를 막아버릴까.…별별 상상을 다 하면서 속상한 마음으로 수박껍질을 거두고 슬리퍼며 티셔츠, 트렁크팬티, 깨진 술병, 담배꽁초, 과자봉지를 줍는다. 개봉도 하지 않은 소주, 맥주, 캔커피도 있다. 쓰레기 개념도 경제관념도 없는 이들의 소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화나는 수고를 해야 할런지 답답하다.

면사무소나 시청에다 하소연을 해볼까? 경고문구의 플랜카드라도 써 달라고, 아니면 분리배출이 가능한 쓰레기통을 좀 설치해 달라고 청을 넣어볼까. 여름철에만 환경감시원을 두고 계곡을 두루두루 관리감독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 계곡에서는 취사행위를 절대 금지하는 법을 만들 수는 없나…생각은 꼬리를 물고 화는 자꾸 오르고…게다가 남편은 환경미화원한테 한 소리 들었단다. 쓰레기를 그렇게 갖다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행락객들의 행태는 해결방안이 없고 그들이 버린 쓰레기를 옮겨놓는 우리를 나무란다? 쓰레기 치우느라 수고한다고 마대자루 한 장 받아본 적도 없다.
계곡을 끼고 사는 죄로 이 여름, 우리의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아름다운 곳에 사니 행복하시겠어요, 안 늙으시겠어요, 하는 손님들의 말씀이 즐겁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하조나라의 단골이라고 자처하시는 분들은 떠난 자리도 단정하다. 음식이 늦어지면 바빠서 힘들겠다 걱정도 하시고 장사 잘 되니 보기 좋다며 웃는다. 쟁반도 들어주고 직접 반찬을 가지러 오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동생이, 딸이 고생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며 마음을 써 주신다. 이런 분들 덕분에 힘이 생기고, 미소가 얼굴에 앉는다.
그래도 여름은 사랑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