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불명예는 영원하다’
‘빈곤은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불명예는 영원하다’
  • 한관호
  • 승인 2008.08.07 09:14
  • 호수 2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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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라는 나라에 대해 5회에 걸쳐 연재를 했다.
주로 생태농업과 중세 건축물이 주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가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헌데 연재를 마치고 나니 그것만 가지고는 어쩐지 쿠바라는 나라가 필자에게 준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칼럼난까지 끌고 왔다.

요즘 주변에서 ‘쿠바 전도사냐’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쿠바라는 나라가 그렇게 매력적이냐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론 외국 한 번 다녀온 것 가지고 너무 우려 먹는다는 핀잔도 들어있지 싶다. 
우리에게 있어 쿠바는 카스트로가 독재를 하는 사회주의 국가 정도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 나라가 추구하는 세상은 어떤 것이며 그 나라의 역사, 그리고 현대를 사는 그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총체적으로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필자 또한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 머문 것에 불과해 쿠바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극히 주관적이지만 쿠바는 꽤 괜찮은 나라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기실 자본주의, 그것도 천박한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쿠바가 그리 부러울 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쿠바의 교육, 주택, 교통 상황 등을 들여다보면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게 열악하다.
취재진이 방문한 한 초등학교의 경우 필기구가 부족하다고 했다. 한국에선 이미 보편화된 멀티미디어 교육은 구경하기 힘들다. 더구나 도심에 있는 학교들은 대부분 넓은 운동장이 없어 체육 시간에도 아이들이 맘 놓고 뛰어놀지 못한다.

주거 공간 또한 열악하다.
거리 곳곳의 소형 아파트들에서는 베란다에서 플라스틱 대야에 물을 받아 아이들을 목욕 시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지하철, 시내버스, 고속버스 등이 일반화 돼 있지 않아 장거리 이동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또 밤이면 술집이 불야성을 이루거나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광경은 쿠바에선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다.
그럼에도 쿠바는 우리가 갖지 못한 자산이 풍부하다.
무엇 보다 쿠바는 형식과 계급, 인종, 연령, 지역에 따른 차별을 없앤 나라이다.

쿠바는 흑인, 백인, 그리고 물라토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쿠바 거리를 다녀보라. 피부색이 무엇이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여자 의사도 남자 의사만큼 많다. 서로 피부색이 다른 연인은 이미 구경거리가 아니다. 젊은이와 어른이 마치 친구처럼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장유유서’, 계급장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우리 풍토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몇 가구 살지 않는 시골이라 할지라도 학생 수 3명만 넘으면 분교가 유지된다. 우리의 경우 효율성 운운하며 대부분의 학교를 통폐합 해버린 것에 비해 수요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복지 정책으로 선진국 보다 문명율이 낮다. 더구나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죽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부패 지수 또한 선진국에 비해 극히 낮다. 한 인터넷 언론인은 ‘1 페소를 훔치는 사람은 있어도 100만 폐소를 훔치는 쿠바인은 없다’고 말했다. 쿠바에서 사업을 하려면 저녁 식사에 초대해 럼주를 대접하지만 뇌물이 오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음악은 강물처럼 흐른다.
쿠바는 광장 문화가 발달 돼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는 광경은 일상이다. 아바나 거리를 걷다보면 작은 거실에 카세트를 틀어놓고 살사춤을 추는 역동적인 젊은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처럼 음악을 일상으로 같이 하는 그들이라서인지 성품 또한 유순하며 타인에게 친절한 것도 여느 나라에서는 느껴보기 어렵다. 더구나 스페인으로부터 오랜 지배를 당했으며 혁명 이전에는 계급과 인종 차별이 매우 심각했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쿠바인들의 친절은 타고난 기질이 아닌가 싶다.
‘빈곤은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불명예는 영원하다’.

카스트로의 이 말이 쿠바 사회의 지향성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쿠바 남부에는 관타나모 미국 해군 기지가 있다. 이는 미국이 쿠바를 주무르던 1903년에 미국의 내정간섭과 군사기지를 설치할 수 있다는 ‘플래트 수정조항’에 따른 것이다. 이 조항은 1934년에 폐지됐으나 적대국인 미국의 군대가 쿠바에 주둔하는 것은 계속되고 있다.
헌데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해마다 거액의 주둔비를 내지만 쿠바에서 이를 수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존심을 팔아 배고픈 걸 달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이슈는 ‘촛불집회’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쇠고기 수입 그 자체가 아니라 ‘검역주권’을 포기 한 것에 분노했다. 다시 말해 빵 보다 자긍심이 더 가치 있다는 민의다.
쿠바 취재, 그 뒷이야기를 쓰면서 우리가 쿠바에서 배워야 할 게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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