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뒷 편에 드리운 이야기, 둘
올림픽 뒷 편에 드리운 이야기, 둘
  • 한관호
  • 승인 2008.08.21 10:56
  • 호수 2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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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하나.
 
천정부지로 치솟던 기름 값에다 끝없이 추락하는 경제로 허리띠 잔뜩 조여매야 했던 서민들, 그 깊던 시름을 한 방에 날려버린 베이징 올림픽. 이런 저런 무더위로 삭정이처럼 메말라가던 국민 정서에 잠시나마 위안이 되니 굳이 올림픽을 험 잡을 이유가 있으랴.
그랬다.

댓바람부터 유도의 최민호가 냅다 한판으로 금메달을 땄다. 이에 뒤질세라 국민영웅 박태환이 한국 수영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건져 올렸다. 내친김에 한 때는 종합 순위 3위까지 등극했으니 한국을 스포츠 강국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또 시차도 별로 없으니 눈 벌게질 때 까지 천하장사도 못 뜬다는 눈꺼풀 간수에 신경 안 써도 되는 고로 텔레비전 시청률도 역대 어느 올림픽 보다 높다.  
하지만 한국의 건아들이 세계무대에서 파이팅을 하는 사이 국내에서는 전혀 파이팅 스럽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국민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어 백악관에 상찬한 소고기 수입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를 사그라뜨리기 위해 물대포와 사실상 백골단이 연상되는 경찰기동대를 부활시켰다. 신뢰도 1위인 케이비에스 방송국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키더니 급기야 나라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광복절, 건국절 논란을 야기했다. 그도 모자라서인지 퇴폐한 재벌 총수와 부패한 정치인들을 슬그머니 복권시켰다.
회사의 부당함에 맞서 목숨을 건 단식으로 급기야 병원으로 실려 간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그들의 눈물은 애써 모른 체 하면서 올림픽 경기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대통령 얼굴이 교차하는 한국이다. 이제 올림픽이 끝나면 모든 선수들은 인천공항에서부터 화려한 카프레이드를 받을 것이다. 그 시각 촛불집회 때 붙잡힌 이들은 구치소나 경찰서에서 심문과 조서를 받을 것이다. 올림픽 그 뒷 켠에서 벌어지는 한국 사회의 두 현상이 자꾸만 겹친다. 까딱 올림픽에만 정신을 놓다가는 십 수 년 어렵사리 지켜온 나라의 정체성이 절딴 날 판이다.  
 
이야기 둘.
 
필자 역시 범부인지라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올림픽 중계에 잔뜩 귀를 세운다. 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탁구에 눈이 꼽혀 있다. 선배 탁구 인들의 내홍으로 훈련조차 제대로 못하고 마음 고생이 작심했던 선수들이 남녀 나란히 동메달을 땄다. 축하를 보내며 개인전에서도 선전하길 빌고 있다.  
헌데 이렇게 올림픽에 시선을 붙들어 두고 일희일비 하는 한편으로 다른 생각 하나가 스물 스물 기어 나온다.

금, 은, 동을 목에 걸고 자랑스레 시상대에 오른 이들, 우리는 왜 이들에게만 환호를 보내는가. 4년을 한결 같은 바람으로 피땀 쏟았고 무대에 올라서는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기량이 한 수 뒤져, 혹은 부상이나 시합 날 몸 상태가 안 좋아 성적을 못 낸 선수는 없는가. 그 설움으로 선수 대기실 한 켠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를 어깨에도 격려를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라의 대표로 올림픽 무대에 선 것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 아니냐며 다독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또 한편으로 올림픽 무대에 선 이들을 텔레비전으로 부러이 바라보는 쓸쓸한 눈동자는 없을까. 어느 영화제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은 배우 황정민은 ‘저는 스텝들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았다’ 며 자신의 영광을 스텝들의 공으로 돌렸다.
마라톤에서 세계를 제패한 황영조, 이봉주 선수는 우리 뇌리에 영웅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그들의 찬란한 영광은 순전히 개인만의 것인가. 대개 마라톤 종목은 나라 당 한 선수만 출전 시키지는 않는다. 자신이 우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전 선수의 패이스를 이끌고 때로는 다른 선수들을 견재하며 오로지 주전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길을 트는 선수도 있다.

또 국가 대표들과 지난 몇 년 태릉선수촌에서 함께 땀 흘렸으나 정작 올림픽에는 나가지 못한 훈련 파트너 또는 선수 도우미들도 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파트너가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라며 손에 땀을 쥐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1등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1등만 기억하려 한다. 나아가 승자만 영광을 독식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누군가 어두운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으로도 서 있어야 한다.
이제 주말이면 올림픽이 끝나고 청와대의 지고한 배려로 선수단 카퍼레이드를 위해 귀국도 못하고 묶여 있던 선수들도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자랑스런 그들이 먼저 가야할 곳은 청와대가 아니다. 선수촌에서 기꺼이 자신의 땀을 훔쳐 주던 도우미들을 찾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하물며 조국이 총부리를 겨눈 전쟁 중임에도 포옹으로 서로를 격려하던 러시아와 그루지아 선수들은 세계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 주었다.
한국 체육인들의 미덕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