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들의 명암
노숙자들의 명암
  • 한관호
  • 승인 2008.09.25 09:00
  • 호수 28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3일, 국회 도서관에서 ‘신문 공공성, 다양성 확대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회 참가자들과 뒷 풀이를 한 후 택시를 탔습니다.
 
동승한 전 전국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이 자고 가라고 했지만 택시 기사에게 대전가는 새벽 기차는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기사 분은 노래에도 ‘대전 발 0시 50분’이라고 했으니 서울역에서도 아마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헌데 서울역에 내리니 막차 떠난 지 오래라고 합니다.

역 대합실에서 서성이노라니 역 관계자가 첫차는 05시 25분에 있다, 문을 닫아야 하니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날 저는 영락없는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역 광장엔 노숙자들 2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고스톱도 치고 술도 마시고 그렇게들 놀고 있었습니다. 천안까지 합승할 택시를 기다린다는 저와 처지가 비슷한 어떤 분에게 “노숙자들은 날이 세면 돌아 갈 곳이 있을까요” 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는 6-7년 만에 와보는데 그때보다는 노숙자 수도 줄어들고 행색도 나아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IMF를 맞아 서울역 등에 그야말로 노숙자들로 넘쳐나던 시절, 그럼 노숙자가 줄어든 것처럼 나라 경제가 튼실해져 당신의 살림살이도 나아졌습니까. 아니,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지금도 그냥 저냥 산다. 그럼, 그때 나라 살림을 망하게 한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는 그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정치인이란 원래 공은 내세우지만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예닐곱 살 정도 되는 한 어린이가 노숙자들과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노숙자들 모두가 삼촌과 이모인양 그 어린이를 살갑게 대했습니다. 이 시간이면 대한민국 어린이들은 단잠을 자고 있을 터인데. 날이 세면 저 아이는 누구와 어디로 갈까. 아님 서울 역 인근을 서성이며 잔돈을 구걸할까. 
서울역을 오가는 행인들에게 한 푼 두 푼 얻어 먹거리와 술을 사 마시며 겨우 겨우 연명하는 일상. 내일이 기약 없는 서울 역 앞 노숙자들을 보고 자란 저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저 어린이의 미래, 나아가 노숙자들의 문제는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순전히 개인만의 책임일까요.
대전으로 돌아와 ‘노숙인 다시서기 상담 보호센타’에서 일하는 고향 후배 이수범 기획운영 과장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다음은 그가 전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IMF가 터졌을 때는 우리 모두가 나도 어느 순간 노숙자가 될 수 있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돼 노숙자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른 후 상당수 노숙자들이 집과 일터로 복귀 하면서 노숙자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나빠졌다. 다시 말해 노숙자도 막일이라도 하면 될 텐데 무의도식 한다는 편견으로 노숙자 문제를 순전히 개인 문제로 치부했다.

시설에 있는 노숙자들은 매일 새벽 6시면 일을 나가며 재활을 다지고 있다. 하지만 복지시설에 적응을 못하는 집이 없고 신용불량자에다 알콜 중독이나 정신질환까지 겹친 노숙자들이 가장 큰 문제다. 이들에게는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며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복귀가 가능한 이들을 위해서는 장애인 공동작업장처럼 그들끼리 동질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 

형님이 본 서울역 앞 노숙자는 일부에 불과하다. 지금도 서울에서만 해마다 2-3천명의 노숙자가 꾸준히 나온다. 그러나 이 통계는 노숙인 시설의 지원을 받기위해 공식적으로 상담을 받은 사람에 불과하다. 비공식, 나아가 전국 노숙자를 합산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내년 예산편성에서 복지 부분은 동결한다는 애기가 나온다. 겨울이 다가온다. 매년 7% 성장, 4만불 시대, 세계 7대강국을 기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에서 인간이 최소한 굶거나 얼어 죽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노숙자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하는 ‘노숙인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 연락처는 (02-777-5217)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