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유감
가을 유감
  • 하조나라 김세광, 복향옥
  • 승인 2008.09.25 09:14
  • 호수 2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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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요즘하는 수영이 정말 재미있어요"
" 요즘에 무슨 수영이냐 ?  춥지 않니 ? "
" 아니요, 계곡물이 더 따뜻해요"
철이 지난 듯 싶은데도 아들은 수영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며칠 전에는 읍내에서 온 아이들과 오랫동안 물 속에서 다이빙을 즐기더니 컵라면까지 맛있게 먹었다. 날씨가 늦도록 무덥다보니 아이들도 더위를 참기가 어려웠나보다.
이곳엔 늘 친구가 없다고 시큰둥하던 아이가 요즘들어 물놀이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자연을 저렇게 즐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계곡에 발을 담궈보니 아직 물이 따뜻하다.
사람들이 붐벼대던 한 여름 휴가철에 비하면 요즘은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엔  아주 좋은 듯하다. 가을답지 않게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가을이 혹 사라지지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그러나 무더위와는 상관없이 산에는 벌써 밤이 떨어져 뒹굴고 있다.
밤값이 없으니 줍지 않은 채 방치된 밤들이 참 많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면서 잠시 주워보니 벌레 먹은 밤들이 절반이다. 게다가 주먹보다큰  모과들이 이곳 저곳에 떨어져 뒹굴기도한다.
코를 대고 향기를 맡아보지만 그들에게도 냄새가 없다. 예전 같으면 시에서 항공방제를 해 주었는데 요즘은 유기농 경작으로 농약을 전혀 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벌레 먹은 과실이 많고 모기나 해충들이 제 세상을 만난듯 맹렬하게 달려든다.
시골에 살다보니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올 여름엔 비도 많이 오지않고 유난히 무더위가 심해서 가을을 많이 기다렸는데 가을은 그리도 발길을 옮기기가  어려운 것인지…

산에서 나오는 과실도 올해엔 맛이 덜하다.
기후 변화 탓이리라. 햇볕과 적절한 기온의 변화가 있어야하는데 계속 무덥기만 하다보니 과일도 제맛을 못 내는가보다.  논밭에서 농사일을 하는 마을 사람들은 유난히 많은 땀을 흘린다.
풀을 베고 벼를 베면서 날씨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힘들어한다.
그러나 이미 가을은 우리 속으로 벌써 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는 떨어지는 낙엽들이 점차 많아진다.
벗나무, 왕가시나무, 감나무 등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변색되어 마당을 덮는다.
빗자루를 잡고 마당을 쓸다보면 제법 많은 나뭇잎들이 쌓이고 길이 깨끗해진다.
그러다보면 나의 마음도 여름에 비해 많이 달라져있음을 느낀다.

가을에는 가지마다 주렁주렁 과실을 매단 나무도 곡식도 머리를 숙이지만 사람도 먹이를 숙이게 된다.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한편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새롭게 가야 할 길을 생각케하는  때문이리라. 그래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했던가 !
가을의 작은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흐트러진 마음을 고쳐세우고 앞날을 설계한다.
황금같은 가을이 짧아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척 아쉽지만  이대로 흘러보내기엔 더욱 아깝다.
아이들도 가을이면 한층 성숙해지고 생각이 깊어진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은 뒤로 미루고 가족과 함께 산에서 뒹굴고 있는 밤줍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산에 올라  높아진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산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을이 얼마나 좋은 계절인지 느끼게 해주어야 할 것 같다.   
금방 달아나버릴 듯한 이 소중한 가을 !
하루 하루를 더욱 의미있고 보람차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