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엔 청백리가 없다!
이 나라엔 청백리가 없다!
  • 광양뉴스
  • 승인 2013.02.18 09:31
  • 호수 5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석태 교육평론가

강석태 교육평론가
‘청백리’(淸白吏 : 청렴하고 결백한 관리)라는 낱말이 요즘 세상에서 까마득히 잊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들여 추천한 국무총리 첫 후보자(김용준)가 나가 떨어졌다.

여러 가지 흠이 있었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 부정한 치부였다. 그를 대신할 후보자를 찾는 데 열흘이 걸렸다. 그리고 찾아서 추천된 자(정홍원)도 그다지 깨끗하지는 못하다.

예부터 공직 사회에는 탐관오리가 득실거렸다. 조선시대에 청백리는 그 많고 많은 고관대작들 중 불과 218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고대방(典故大方=한말인 1924년에 유학자 항효석이 우리나라의 역대 인명에 대한 전거를 기록한 책)’에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 그렇게 청백리로 선발된 사람들에게는 본인에게 재물을 내려주거나 승진을 시켜주기도 하고, 죽은 사람은 자손에게 역시 재물을 내려주거나 관직에 등용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제도를 두어 청백리를 귀히 여긴 시대에도 뇌물이 유행해 청백리 후손들에게 벼슬이 돌아 갈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이익 ‘성호사설’).

그 당시 청백리 선정의 기준을 보면 대체로 청백(淸白), 근검(勤儉), 경효(敬孝), 후덕(厚德), 인의(仁義) 등 덕목을 가진 자로서 국가나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고 깨끗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옛 어른들이 말한 ‘선비’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찾는 청백리가 아닌가 한다. 일본인이 저들의 정신적인 전거를 사무라이(武士)에 두고서 오늘에도 그 전통을 자랑하듯이 우리는 ‘선비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까운 순천시에서 ‘팔마비’를 본다. 고려조 충렬왕 때 지금의 순천인 승평부사로 있던 최석(崔碩)이 내직으로 영전하여 중앙으로 가게 되자 주민들이 전례에 따라 부사에게 말 7마리와 따로 법조에 올리는 말 6마리를 올렸다.

그런데 최 부사는 상경 후 법조에 올린 6마리를 제외하고 자신에게 준 7마리에다 새끼 한 마리를 더해서 8 마리를 다시 승평으로 돌려보냈다. 그것으로 인해 그 이후 그와 같이 원님이 떠날 때 말을 상납하는 폐습이 없어져 주민들이 최석의 덕을 칭송하여 세운 것이 ‘팔마비’다. 

이 같은 우리의 전통 선비 상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비춰서 보면 어떤 것일까? 지난 왕조시대와 달리 오늘의 공직자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섬기고 국민의 행복을 위한 행정을 베푸는 것을 의무로 알고 멸사봉공의 정신을 지닌 자라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제 오늘 생긴 것이 아닌 예부터 내려온 덕목이다. 선비, 곧 청렴하고 결백한 공직자는 현실적이거나 감각적인 욕구에 매몰되지 말아야하고, 보다 높은 가치를 향하여 상승하기를 추구하는 가치의식을 갖는 자이어야 한다.

이것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 문헌이 있으니, 그것은 정약용이 남겨주신 ‘목민심서’이다. 정약용은 그 심서의 ‘청심’ 편에서 “목민관이 염결, 청렴결백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으로 지목하여 마을을 지날 때에 더러운 욕설이 비들할 것이므로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매섭게 교훈했다. 여기서 말한 목민관이란 오늘의 공직자를 이름이라, 오늘 이 나라의 모든 공직자는 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더 부연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이러한 우리 겨레의 역사에 남은 청백리 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가공무원법(1981. 4. 20 제정)에 청백리상에 관한 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탐관오리만 창궐하는데, 이 청백리상 수상자는 누구며 몇 사람이나 되는지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