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진행자의 중도하차를 보며
한 방송진행자의 중도하차를 보며
  • 한관호
  • 승인 2008.11.20 09:39
  • 호수 2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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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비에스 방송 ‘윤도현의 러브레타’, 우리 가족이 유난히 애청하던 프로그램이다.
우리 집은 텔레비전이 있어도 평소에는 잘 켜지 않는다. 필자가 더러 축구 경기를 볼 때, 안 사람이 즐기던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 낫다, 아들 녀석이 코미디 프로를 볼 때나 겨우 제 구실을 하는 물건이다. 그런데 딱 하나, 세 식구가 즐거이 함께 보던 방송이 바로 윤도현의 러브레타였다.

사실 필자는 음치 중에서도 진상 음치다. 그러니 누가 노래방 가자고 하면 참 난처하다. 무슨 모임이라도 있으면 대개 2차로 노래방을 가는 데 음치에다 폐쇄된 공간이라 노래방을 터부시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희한하게 꼭 노래를 시키려 든다. 손사래를 쳐도 억지로 시키고, 막상 부르고 나면 분위기 망쳤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그럼에도 최근에는 클레식을 소재로 한 연속극 베토벤 바이러스에 푹 빠졌었다. 금요일 많이 늦은 시간에 방송됨에도 윤도현의 러브레타 또한 수년간 애청해 온 팬이다. 그의 성품처럼 담백한 진행, 출연하는 가수 하나 하나가 어찌 그리 노래를 맛깔스럽게 열창하는지, 저런 가수들이 진짜배기 가수다 싶었다. 

그러나 기실 음악전문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가수 윤도현을 좋아한다. 그와 인연을 맺은 건 ‘타잔’이란 노래를 들고 이제 막 가수로 데뷔한 1996년 여름이었다. 그때 남해에서 열린 축제에 온 윤도현 밴드가 하룻밤 묵어가게 됐고 필자가 그 일정을 함께했다. 그
가 주고 간 시디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런 인연을 들먹이며 지난 6월, 바른지역언론연대 상반기 연수회에 윤도현을 초청했다. 그는, 겨우 기름 값 정도만 받고도 서울에서 태안까지 왔다. 한 시간여, 지역언론인들에게 신명을 불어넣고 갔다.  
 
윤도현이 러브레타 진행을 그만두게 됐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란 여론이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 가족은 물론 러브레타 펜들이 뿔 낫다. 러브레타는 노영심, 이문세, 이소라에서 윤도현으로 이어져 온 음악 전문방송이다. 가수라면 한번쯤은 꼭 서고 싶어 하는 무대라는 평이 따라 붙었다. 입만 벙긋 그리며 현란한 몸짓이나 반반한 얼굴 먼저 내미는 무늬만 가수인 이들은 서고 싶어도 설 수 없는 무대였단다.

애초 그는 대중 곁으로 더 다가서려고 방송을 그만 두려했으나 제작진이 만류했다. 어렵사리 방송을 계속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지 얼마돼지 않아 방송을 그만두라고 하니 애청자들이 정략적인 조치라고 야단인 게다.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건 방송 프로그램은 아주 특별한 경우다. 당사자의 애착이 얼마나 깊으랴. 더구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던 프로그램인데 느닷없이 진행자를 내친다는 건 시청률로 먹고사는 방송국으로서도 자명한 손해다.

방송국에선 긴축 재정을 위해 출연료가 높은 외부 진행자 대신 내부 진행자로의 전환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윤도현은 회당 180만원을 받았을 뿐이란다. 비슷한 급들의 다른 진행자가 받는 출연료에 비하면 그야말로 껌 값이다. KBS 1TV ‘심야토론’과 1라디오 ‘KBS 열린토론’을 진행하던 시사평론가 정관용씨도 물러났다.

시중에선 이들의 퇴출을 정치 성향 탓이라고 본다. 윤도현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해 노래를 부른 점, 정관용은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의 이사‘ 직함 때문이란 것이다.
얼마 전 끝난 미국 대선, 연일 이어진 대선 보도를 보면 오프라윈프리 쇼의 진행자 윈프리를 비롯해 누구나 이름을 알 수 있는 가수, 영화배우 등 연예인들이 줄줄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밝혔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지향점을 밝힌 것에 불이익이 따른다면 선진국이라는 미국 연예인인들 자신의 정치 성향을 쉽게 나타내진 못 할 것이다.  

80년대 초반, 외모가 높으신 분을 닮았다는 이유로 한동안 방송에 나올 수 없었다던 한 탤런트에 대한 씁쓸했던 기억이 새롭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 사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보다 큰 문제는 이런 세상은 잘못된 사회라고 비판해야 할 미디어분야 마저 일그러지고 있다. 21세기, 부끄러운 한국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