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잔에 세월도 쉬었다가는 ‘부흥식당’
막걸리 한잔에 세월도 쉬었다가는 ‘부흥식당’
  • 정아람
  • 승인 2013.07.29 09:19
  • 호수 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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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시원하게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

 

더우면 더울수록 좋다. 비는 굳세게 쏟아질수록 좋다. 오늘 회사 사장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면 더욱 좋고 마음에 고민이 한 두 개씩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행복하고 기쁜 일이 있다면 무조건이다.

중동 주공1차 상가. 빨간 간판이 눈에 띄는 ‘부흥식당’. 이곳에는 오늘도 이야기보따리를 품에 안은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더 한다.

“나 지금 부흥식당인데 수육 먹으려면 빨리와. 100명이나 있어서 줄서야돼”우스갯소리를 하며 수화기 너머로 친구를 부르는 전화마저 정겹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부흥식당 주인장이 정해놓은 수육데이.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손질은 물론이고 가시오가피 등 몸에 좋은 것들은 몽땅 넣어 오랜 시간 푹 삶는다고 한다.

일찍 집에 들어가 쉬려고 하던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고 술을 한잔만 먹으려던 사람도 술을 마시게 하는 부흥식당. 오늘도 자식걱정에 회사 일에, 농사일에 고단함을 핑계 삼아 삼삼오오 부흥식당으로 모였다.

이곳의 명당을 차지한 손님들을 만났다. 같은 성당을 다니며 만나게 됐다는 일명 꽃미남 어르신들은 작은 모임을 만들어 매주 화요일마다 모이고 있다.

꽃미남 어르신들이 정한 부흥식당 1위 메뉴는 바로 새콤하게 무친 서대회 그리고 막걸리란다. 

고추농사를 하고 있다는 우종인 어르신(76)은 오늘도 고추와 고군분투를 벌였다. 하지만 고추가 없다면 인생도 없단다.

더운 날 고랑에 누워 일하느라 흠뻑 젖은 덕분에 두 잔만 마실 막걸리를 벌써 넉 잔째 들이키고 있다. 오늘따라 막걸리 맛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우종인 어르신은 “아따, 오늘 막걸리 맛이 좋다”며 “이곳에 오면 향기를 느낄 수 있어 좋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사람들이 부흥식당으로 줄을 지어 오는 이유는 바로 이 향수 때문이다.

이곳에서 추억을 만나는 사람들. 그 향기에 취해 그들은 그때를 회상한다.

우종인 어르신은 “부흥식당 서대회무침은 제대로 추억의 맛”이라며 “먹을 때마다 옛날 생각도 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도 옆에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르는 맛. 그리고 이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맛. 유난히 이 여름과 오늘이 더욱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신종욱 어르신(80). 이 모임의 우두머리인 신종욱어르신은 교장을 하다 정년퇴임하고 친구 따라 강남이 아닌 광양을 왔다.

신종욱 어르신은 “광양에 와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사니 행복하다”며 “살다보니 오늘만큼 행복하고 소중한 날이 없더라”고 말했다.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자체가 특별한 것이라는 신종욱 어르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치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어쩌면 기적 중에 기적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오늘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한 진짜 막내를 대신하고 있는 김병행(53) 씨는 카메라를 보자마자 반가워한다.

얼마 전 갈치 잡이를 하며 방송에 출연했다는 김병행씨는 “또 신문에 나오는 거냐”며 기뻐했다. 꽃미남 어르신들이 “그럼 너가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봐라”고 툭 던지며 호탕하게 웃는다. 어딜 가나 막내는 임무가 막중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향기를 되찾아주는 곳. 부흥식당의 여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