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 교수와 윤동주 시인의 만남
정병욱 교수와 윤동주 시인의 만남
  • 광양뉴스
  • 승인 2014.06.23 09:55
  • 호수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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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의 대가 정병욱박사 1
연희 전문 졸업 직전의 윤동주(왼쪽)시인과 정병욱 교수.
우리 국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정병욱 박사를 고찰하고자 함은 그의 이력서나 저서에 고향(故鄕)이 하동으로 표기되는 등 그에 대해 잘못 알려지고, 덜 알려진 사실들이 많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해서 그동안 수집된 자료를 활용해 태어난 곳, 자란 곳, 학창시절 그리고 부모형제가 기거했던 곳을 조명하고자 함이다.

뿐만 아니라 망실할 뻔 했던 윤동주 시《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초고(草稿)를 환생(還生)시킨 공을 세상에 알리고자 함도 있다.

또한 윤동주와 연희전문 시절 19개월간 기숙사는 물론 하숙생활에서도 한집 한방에 기거했다는 인연뿐만이 아니라 타고난 선비의 자질과 열정을 가진 학자로 서울대학교에서 27년(1955~1982년)을 비롯, 부산대ㆍ연세대학교를 합해 30여 년 동안 교수로 재임하면서 국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으로 그의 인간과 문학을 살펴보고자 연재를 시작한다. 

가계와 고향을 찾아보니 조부 간송(澗松) 정상철(鄭相轍) 옹은 정병욱의 할아버지고, 아버지는 정남섭씨이다. 그의 장남이 정병욱이며 1922년 4월 22일(음 3월 25일)에 태어났고 태(胎)자리는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문항리이다.

문항리(文巷里)는 남해대교를 건너서 바로 좌회전해 이순신장군의 사당입구로 내려가면 남해의 지형으로 보아 동북방향으로 터진 해안선을 따라 10Km 정도가면 농산물 수집창고가 있는 마을로서 지금은 전국 최우수 어촌체험마을로 선정되기도 한 고장이다.

상철옹이 살았던 옛 집터는 확장된 도로에 편입되어 번지만 있을 뿐 옛 터를 아는 사람은 지금 살아있는 80대 노인들뿐이다. 이 마을은 물론 인근 마을에도 진양(晉陽) 정씨가 모집단으로 살고 있다. 또한 뒤에는 높은 산이 있고 앞은 터져 바다가 보이며 전답이 상당히 넓게 있어 섬 지역으로는 생활양식이 궁핍하지 않았던 곳으로 보였다. 

남해군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인구는 현재 4만7118명이고 세대수는 2만2347호로 깨끗하고 한적한 고장이다. 구성은 도서가 68개이나 이 중 사람이 사는 섬은 3곳뿐이고, 산은 많고 하천은 짧아 계단식 논이 많다. 경작지는 전·답을 합해 80,86㎢ 이며 1973년 남해대교(660m)가 개통되었다.

지명의 유래는 신라 경덕왕 16년(757)에‘남해현’으로 명명되었다. 그 후 고려 공민왕 이후 왜구의 침략이 심해 하동군 북면으로 피난하기도 했던 가슴서린 역사를 안고 있다. 1414년 하동현과 합쳐 하남현(河南縣)이 되었다가 다음해 다시 해양현(海陽縣)이 되었으나 2년 후 남해현(南海縣)으로 환원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지역의 편제가 변경되는 과정을 거쳤으며 1894년 갑오경쟁 이후 지방관제 개편으로 명명된 후 남해군의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병욱의 할아버지인 정상철 옹은 이곳 남해의 ‘글하는 동네(文巷里)’라는 이름의 고장에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지키며 일찍이 학문에 눈을 떠 한학을 배워 서당을 개설하고 훈장으로서 인근 학동을 기르는 일에 전력하였다.

옹은 이곳에서 9남매 중 네 번째로 태어난 장남 남섭을 얻어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던 차 1926년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 1153번지로 식솔을 데리고 이거했던 것이다.
그 사유는 뒤에 다시 살피겠지만 장남인 정남섭씨가 하동, 광양 지역으로 진출하여 활동하게 된 사정의 원인이 된 듯하다. 

상철 옹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1894년(고종 31년) 개화의 바람을 일으켜 백성들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斷髮令)에도 끝까지 묵시적 투쟁으로 두발을 지키고 살았던 인물로 평소에도 정의감이 투철했고 불의에 굽일 줄 몰랐던 선비였다.

그러나 그 옹고집도 손자인 병욱이 동래 고보에 입학을 하게 되자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삭발(削髮)을 했다고 후손들이 전하고 있다.

병욱이 동래고보에 입학이 확정되자 그는 자기의 꿈이 이루어짐은 물론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병욱은 만 6세인 1928년에 하동의 진정공립보통학교(4년제)에 입학했고 졸업 후 진학을 위해 하동공립보통학교(5·6)제로 옮겨 1934년에 졸업하고 그해 동래고보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병욱의 부친 정남섭은 1899년 12월 21일에 남해군 설천면 문항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남파(南坡)로 험난한 세월을 살았으나 다음에 보여진 자식을 네 명이나 키우면서 교직생활과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으니 아름다운 인생이라 보아진다. <다음호에 계속> /조동래 시인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