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관사 철거, 공원 조성만 능사 아니다
시장 관사 철거, 공원 조성만 능사 아니다
  • 이성훈
  • 승인 2014.07.07 09:09
  • 호수 57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개월 후 철거 … 조선시대 객사, 동학혁명 한 서린 곳

광양문화원 뒤에 있는 시장 관사. 개보수 후 정현복 시장이 사용하며 내년 초 철거할 예정이다.
광양읍에 있는 시장 관사가 6개월 후 철거할 예정인 가운데 철거 후 이곳을 역사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장 관사 자리는 조선시대부터 객사로 사용됐으며 동학농민혁명의 한이 서린 곳이기 때문이다.

광양문화원 뒤에 있는 시장 관사는 지난 1983년 준공했으며 지상 2층 규모로 연면적은 212㎡(64평)에 달한다. 하지만 이 관사는 낡고 오래돼 건물 보존 가치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 관계자는“30여년 가까이 개보수를 거의 안하고 사용해왔다”며“건물이 워낙 낡고 사용하기에 불편해 수명이 다한 것으로 판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성웅 전 시장은 이곳에서 12년 동안 살았는데 운영비는 연간 25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 운영비만 지출될 뿐 건물 개보수는 거의 없었다”며“시장 관사는 근대문화유산 주변 공원조성사업 지구내에 부지가 포함돼 있어 내년에 철거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현재 시장 관사는 도배, 장판 교체 등 최소한의 범위에서 보수를 하고 있는데 보수가 끝나는 대로 정현복 시장이 철거될 때까지 이곳에서 머무를 계획이다. 

문제는 관사 철거 후 활용 대책이다. 건물 보존이 더 이상 어려워 철거가 불가피하다면 역사적인 장소임을 감안해 향후 활용 방안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곳 활용 계획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 시장 관사 자리는 조선시대 객사로 라장청(장교들 숙소)이 있었던 곳이다. 특히 지역 문화계에 따르면 동학농민혁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냥 지나친다면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힐 판이다.

시장 관사 자리는 1894년 음력 12월 8일 영호도회소 대접주(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농민군을 이끄는 최고 책임자) 김인배 장군과 수접주 유하덕이 효수된 곳으로 이들은 1894년 음력 12월 7일 농민군 100여명이 전 군수 김석하(金碩夏)가 이끄는 민보군에 체포됐다.

바로 그날 김인배는 처형돼 객사에 효수됐고 다음날 유하덕 역시 처형됐다.

시장 관사는 영호도회소의 수뇌부가 처형ㆍ효수된 장소인 것이다. 또한 광양 봉강접주 박흥서 등 약 100여명의 농민군 역시 잇따라 처형되기도 했다.

지역 문화 관계자는“올해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0년이 됐다”면서“광양은 120년 전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친 그 농민군들의 흔적이 우리 주변 곳곳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세월은 흘렀지만 그때의 가치는 생생히 살아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면서“철거하면 그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역사의 흔적을 기억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장 관사뿐만 아니라 옛 광양읍성 부지를 중심으로 좀 더 큰 틀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휘석 문화원장은“관사 자리 한 곳만 활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광양읍성의 문부터 시작해 읍성 복원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는 지난 2011년 광양읍성 내 관아를 중심으로 한‘광양 역사 흔적 찾기’ 사업을 추진해 옛 광양읍성 관련 시설 5개소와 읍성 내 관아시설 13개소의 위치를 찾아 안내 간판을 설치 완료했다. 간판 설치로 끝낼 게 아니라 읍성 복원을 통해 역사 되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 문화원장은 “우리나라에 읍성이 있거나 복원된 곳은 매우 드물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읍성과 함께 동ㆍ서ㆍ남문, 객사 등을 복원한다면 우리 지역 문화 인프라 구축에 큰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양시는 이곳 활용 방안에 대한 계획은 아직 세우고 있지 않다. 시 관계자는 “관사를 철거하면 이곳에 공원조성사업을 통해 공원으로 활용할 예정”이라며“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짓거나 활용 계획은 아직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 공원조성사업을 추진하면 이곳 활용방안에 대해 시민과 문화계 여론을 들어볼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지역 문화 관계자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곳은 반드시 그 흔적을 남겨 후손들이 간직해야 한다”며 “관사가 철거된 후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면 이 또한 우리 역사를 그대로 지워버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이 관계자는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탓만 하지말고 이처럼 소중한 역사와 스토리가 담긴 곳에 그들의 행적을 담은 기념물을 세운다면 장기적으로 광양문화 경쟁력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