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특산품으로 문화경쟁력 키우자<2> 왕실 진상했던 명품, 60만번 장인의 손길을 거친‘강화 화문석’
전통 특산품으로 문화경쟁력 키우자<2> 왕실 진상했던 명품, 60만번 장인의 손길을 거친‘강화 화문석’
  • 이성훈
  • 승인 2015.10.16 19:10
  • 호수 6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문석 농가, 90년대 들어 서서히 줄어 … 관광상품 개발, 해외시장 개척 절실
강화 화문석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강화도는 제주, 거제, 진도, 남해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큰 섬이다. 송해면은 강화도의 북쪽 기슭에 있으며 당산리는 바다 건너 북녘 땅과 불과 1.7Km 거리에 있다. 육안으로 북녘 땅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남방송이 들렸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이 조용해지고 평화전망대도 생겼지만 지금도 마을 한가운데에는 군인이 24시간 보초를 서는 검문소가 있다. 주민은 무사통과지만 외지인은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너른 들판과 예스런 고향집이 고스란히 남은 강화. 강화하면 가장 잘 떠오르는 단어가‘화문석’이다. 한해 화문석마을을 찾는 체험객은 1만여 명에 달한다.

윤이 나고 질긴 강화 왕골처럼 화문석은 강화도 북쪽 기슭에서 면면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화문석(花紋席)은 말 그대로 꽃무늬를 놓은 자리다. 그래서 예로부터 화문석을 꽃돗자리라 불렀다. 강화도에서 나는 왕골은 순백색 완초의 기질이 살아있어 기품 있는 화문석을 만들어낸다. 우수한 품질 덕에 화문석은 고려시대 송나라와 원나라에 수출되는 인기품목으로, 조선시대에는 청나라와 일본에 보내는 선사품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화문석 한 장에 60만 번의 손길

강화 화문석은 고려시대부터 전수된 강화도 특산품으로 유명했다. 강화 화문석의 정확한 역사는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중엽부터 가내 수공업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전해진다.

몽골의 침략으로 39년 동안 강화도가 고려의 수도의 역할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때 왕실을 위해 최상품의 자리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양한 도안 개발과 제조 기술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왕골 돗자리라는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과 나주 출신 장화황후의 아들로 태어난 혜종의 탄생 설화에서 유래했다.

왕건과 오씨 처녀가 사랑을 나눈 자리가 혜종왕 얼굴에 골이 지게 하였다 하여‘왕골 돗자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첨가돼 강화 화문석은 더욱더 유명세를 띠고 있다. 화문석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왕골은 봄에 씨를 뿌려 5월에 모내기를 한다. 7~8월 성인 남자 키만큼 길이가 자라면 왕골을 수확해 건조시킨다. 잘 말린 왕골은 각양각색의 물을 들여 틀에 올린다.

날실로는 대대로 칡넝쿨을 가공해 사용했지만 현재는 나일론실을 이용한다고 한다. 틀에는 고드렛돌에 감은 날실 두 개를 하나로 묶어 1.5cm 간격으로 매달고 왕골 겉감과 속감을 한데 모아 고드렛돌을 돌려 가며 화문석을 짜낸다.

왕골을 가늘게 쳐서 고드렛돌을 120개씩 넘기는 과정을 거쳐 옷감 짜듯이 만드는 것이 화문석이다. 강화 화문석 기능 전승자인 서순임 강화 완초 전통보존회장은“화문석 만드는 방법이 어렵지는 않지만 손이 많이 가고 매우 힘들다”며 “둘이 만들면 1장 완성하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화문석 한 장에 60만 번의 손길이 간다는 말이 나온다.

관광상품 개발, 국제시장 눈 돌려야

 

농업회사법인 왕자골화문석 박윤환 대표

강화 화문석은 여름에는 통풍효과가 좋고 겨울에는 냉기를 흡수한다. 오래 쓰더라도 윤기가 쉬 사라지지 않고 질겨서 잘 부스러지지 않는다. 화려하게 수를 놓은 화문석은 품질이 좋아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강화도에서만 연간 약 5만점이 생산됐다.

화문석 제작 과정
화문석 체험
화문석 문화관에 전시된 작품들

당시에는 강화 농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000여 가구가 화문석 제작에 종사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제작 가구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강화 화문석이 본류를 지켜가면서 관광상품 개발과 해외시장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업회사법인 왕자골화문석 박윤환 대표는“화문석의 부활을 위해서는 품질과 디자인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지난해 중소기업청에서 시행하는 맞춤형 창업 지원 사업의 공예부문에 선정돼 디자인 인력을 지원 받으며 새로운 화문석 개발에도 몰두하고 있다.

화문석에 관한 지적재산권 확보를 위해 특허 2종과 상표권 1건의 출원을 마친 박 대표는 올해 함평에 있는 왕골 농장 현장연수를 통해 왕골 재배와 가공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영농에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화문석은 60만번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수공예품”이라며“통풍이 잘되고 습도를 유지하는 자연을 담은 제품이다”고 강조했다. 그는“선조의 슬기로운 과학이 담겨 있는 우리 문화의 자부심을 살리는 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