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 문화탐방| 수월정(水月亭)의 전설<16> 옛 수월정은 어디에 있었는가
우리지역 문화탐방| 수월정(水月亭)의 전설<16> 옛 수월정은 어디에 있었는가
  • 광양뉴스
  • 승인 2016.05.2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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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래 시인•수필가

  이어서 옛 수월정(水月亭)의 위치를 논할 것이다. 지금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수월정에 관한 시지(市誌)의 내용(수월정의 개요)은 이렇다. 다압면 섬진강변에 있었는데, 현재는 처음 지었던 수월정은 사라지고 없다. 이조 선조 때 나주목사를 지냈던 정접(鄭渫)이 만년을 보냈던 곳으로 그 뒤 송강 정철이 수월정기(水月亭記)를 썼다.

  수월정기는 수월정유허비의 비음기(碑陰記)로 기록돼 전하고 있으며 한편 이 고장을 무대로 지은 시 30수가 강수은집(姜睡隱集)에 전해온다. (羅州牧使 鄭渫과 松江 鄭澈과의 生沒연대가 서로 시기 적으로 맞지 않는 점이 있어 앞으로도 좀 더 살펴 보아야할 사항임). 수월정이란 정설의 호(號)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수월정의 기록은 광양의 역사기록, 1798년 발간된 읍지(邑誌)부터 그 후 발행된 읍지마다 내용이 수록돼 있고, 1925년 읍지에 시 30수가 있다.

  이로보아 정자(水月亭)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자료에 의해 1999년 광양시에서 현재의 위치에 수월정을 건립했고, 그 내용이 게시돼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 4명{김일만(1934년생, 다압면 지막길 24호), 구부림(1939년생, 다압면 도사리 섬진), 박창식(1957년생, 도사리 136-4), 박창환(도사리 121번지, 1962년 9월생)의 증언에 의하면 현재 박창환이 살고 있는 집터가 처음 수월정의 터였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들에게 들어보면 60년 전까지 만해고 그 터와 인근에 군(섬진진) 막사의 잔해(기와 및 목재)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증언자들은 그곳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했기 때문에 기억이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창식은 장남이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구전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그 내역을 들었다며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 사연은 이렇다. 박창환이 살고 있는 터에 별장(別將)이 집무를 수행했던 사령청의 청사가 있었던 장소라고 일러주더라는 것이다. 창식은 그곳에서 대대로 거주하고 있는 현지민이며, 지금의 수월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그 위치란 현재의 수월정으로 부터 직선거리 서쪽 약 150m와 표고 50여m 떨어진 둔덕에 있다. 그곳은 바로 지금 박창환(박창식 동생)이 살고 있는 집터이다. 그곳에 있던 정자가 언제 건립되고 언제 훼철되었는지의 기록 현재 찾을 길이 없다.

  이곳은 섬진진이 있던 곳인데 처음 수군이 주둔한 것은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간파하고 기지로 활용하고자 수군을 상주케 했던 것이다.

  그 후 숙종 31년(1705)에 조정에서 정식 수군 진(鎭)으로 정하고, 승격했으며 종 6품 별장(別將)을 파견하게 되었으며 당시 수군은 280여 명이 주둔했다.

  원인은 판옥선 1척에 130여명의 승선인원이 필요했다. 임진장초에 의하면 진월면 선소에 전선(戰船)4척이 정박해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배(船)를 만든 곳이라 해서 선소(船所)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이때 광양지역 수군에 4척(판옥선 2척, 척후선 2척)의 전선이 정박 했으며 광양호 라는 깃발을 달고 임진왜란 때 해전에 참가했다. 그로보아 안전을 위해 내륙 깊숙한 곳, 섬진진에 네 척의 배가 정박했을 것으로 추리할 수 있다. 이곳에 수군진이 설치됨으로서 병영 안에 아사·작청·장청·사령청의 청사·군기고·화약고·진창의 창고 성황당의 제단 등의 막사가 있었다.

  그리고 전선이 정박하는 선창 등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이 때 설치된 사령청이 설치된 곳이 바로 박창환이 거주하는 터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월면 선소에서 섬진진 까지는 약 16Km 이며 그 중간에 신아보류가 있다. 이 보류는 해발 150m정도에 설치돼 있으며 초소역할을 했다고 보여 진다. 보류란 수군조직의 최하 단위부대였으니 섬진강 하구를 오고가는 왜선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다.

  이제 장소는 확인된 상태이니 언제 건립되고 어떻게 훼철되었는지를 규명해 보아야겠다.

  追, 14회 차 말미에 수월정과 수월정 유허비의 연대가 교차되었음을 정정고자 한다.    

 

 다음호에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