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신덕희(시민기자)
살아가며…신덕희(시민기자)
  • 광양뉴스
  • 승인 2018.06.01 19:00
  • 호수 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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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쥐가 묵고, 하나는 새가 묵고, 하나는 우리가 묵어야제…’

3월초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우리도 밭이 생겼다며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채 지금 당장 보러 나가자고 했다.“갑자기 무슨 밭?” 하며 따라 나섰다.

금호동 주민센터에서 모집한‘도심 속 텃밭이야기, 주말농장 분양’에 접수를 했었는데 그게 당첨됐다는 것이다.

5평도 채 되지 않은 작은 땅에, 남편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좋아서 들떠 있었지만 어렸을 적 맨날 밭에서 김을 매야 했던 나는 사실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처음엔 옆 텃밭에서 뭐를 심었는지 배워야 한다며 일주일에 한번 꼴로 나를 데리고 나가던 남편은 옥곡 오일장에 가서 상추씨앗과 깻잎씨앗, 그리고 배추와 고추모종을 심고 나서는 하루에 한번 씩 혼자서라도 꼭 밭으로 갔다.

씨를 뿌린지 고작 3,4일 밖에 안 되었는데도, 왜 새순이 올라오지 않는지에 대해 거름을 잘못 준 건지, 씨를 너무 깊게 심은 건지, 잘못 심어서 씨가 다 죽은 건 아닌지 남편은‘오도방정’을 떨며 끊임없이 걱정을 늘어놓았다.

새 순은 심은 지 거의 20일이 넘어서야 올라왔다. 순이 올라 온 그날부터 남편은 저녁 산책 코스에 필수로 밭을 넣었다. 나는 싫던 좋던 남편과 함께 날마다 그 밭을 시찰해야만 했다.

“아이고, 정말 잘 키우셨네요. 작년에도 하셨어요? 저희는 신참입니다, 이건 뭐예요? 고춧대는 계속 이렇게 세워줘야 하는 건가요? 아, 참 대단하십니다. 하하하하!”

남편에게 있어서 옆 텃밭 주인들은 모두 존경의 대상이었다. 남편은 수다쟁이가 되어서 이것저것을 죄다 묻고 다녔는데 어둑어둑하면 맘이 많이 바쁠 텐데도 모두들 귀찮은 기색하나 없이 참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감자며, 콩이며, 파 등 부지런한 이웃 농부들은 참 잘도 키웠다.

밤 모기의 극성도 이들을 말리지 못했다. 새순이 올라오자 나도 재미가 들렸다. 시골 집에서 콩과 팥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도 몇 개 갖고 와서 심었다.

“세 알을 넣어서 심어라. 하나는 쥐가, 하나는 새가, 하나는 우리가 먹을 거야.”어렸을 때, 그 지겨워하던 밭일을 할 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팥 세알을 넣고 호미로 흙을 덮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다시 한 번 우리 엄마랑 머릿수건에 일 바지 입고 도란도란 쪼그리고 앉아서 콩이랑 팥을 심고 싶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