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
서울 나들이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9.18 09:19
  • 호수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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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명절을 쇠러 가는 게 아니라 여행을 떠나는 걸로 착각할 만큼 우리는 신이 났다.
옷가방을 꾸리는 나는 물론, 우리 산에서 수확한 밤이랑 족구장 옆에 있는 무화과를 박스에 담는 남편의 손길도, 책이며 닌텐도며 자기 소지품을 챙기는 동하의 손길도, 핑크색 악세서리를 골라 핑크색 가방에 담는 하진이의 손길도 즐겁기만 하다.

어머니와 형제들을 그리는 남편의 마음, 친정언니들과 통일동산 이웃들을 그리는 내 마음, 옛 친구들을 그리는 동하 마음, 가족이 같이 있으면 무조건 좋은 하진이 마음. 각자 마음이 어디 있거나 우리는 행복한 얼굴로 대진고속도로 상행선을 달렸다.
가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헤아리고 며칠 밤을 지낼 것인지, 누구누구네 집에서 묵을 것인지를 얘기하느라 좀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특히 예전에 살던 파주 통일동산에 들른다는 사실에 동하와 나는 거의 흥분상태였다. 아들보다 더 애 같다고 트집잡는 남편의 핀잔도 노래로 들린다.
첫날은 시어머님과 시동생이 있는 의정부에서 짐을 풀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다섯 살짜리 하진이가 “저도 아파트 알아요.” 해서 우리가 폭소를 터뜨렸더니 금세 토라져 버린다.
공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동서랑 차례상에 올릴 전을 준비했다.

색깔별로 종류별로 일곱 가지를 만들어, 큰아주버님이 사시는 구리로 갔다. 서른이 넘은 사촌형님이 치킨을 사온다는 말에 새벽 1시까지 쌩쌩한 얼굴로 기다리는 동하랑 하진이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어쨌거나 나도 오랜만에 치킨을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다음날 차례를 지내고 나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고 과일 먹고 차를 마시는 동안, 동하 엉덩이는 잠시도 붙어있지 않았다. 친구들이랑 놀 시간이 줄어든다고 노심초사더니 출발하는 차안에서는 상기된 얼굴로 “가슴이 막 두근거려요”한다.

달리는 차안에서 내내 친구들과 전화를 하고 문자메세지를 보내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동하얼굴에 환한 보름달이 떳다.
통일동산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널따란 들판이 리조트로 변하는 중이었고 주택단지에는 못 보던 예쁜 집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나의 환호성에 동하가 즐거운 목소리로 한 마디 한다. 
“완전히 촌놈 다 되셨네요.” 
“촌놈?”
“아니, 촌여사…”

동하랑 형제처럼 가까이 지냈던 동혁이, 정환이, 관형이와 그 가족들을 잠시 만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동하를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경기도 적성에서 허브나라를 준비 중인 셋째언니 집으로 차를 몰았다.
영국에서 7년여 동안 아로마테라피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공부한 셋째언니의 꿈이 펼쳐질 장소다.
유기농 아로마오일을 직수입, 판매하는 샵,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강의실, 직접 오일맛사지를 하는 시설들이 작은 규모지만 아기자기하게 마련돼 있었다. 시월이면 영국에서 시설감사단이 온다고 한창 준비 중이었다.

일본에서 3년 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둘째언니네와 엄마를 모시고 올라온 셋째오빠네 까지 모여 삼겹살 파티를 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에서 다양한 주제로 꿈결같은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부랴부랴 아로마오일을 이용한 비누만들기 공부를 한 다음, 하진이가 갖고 싶어하던 예쁜 비누들을 한아름 싸들고 둘째언니네랑 일산으로 향했다.

통일동산에 들러 동하를 데리고 이웃집 처럼 드나들던 영어마을과 헤이리 예술마을을 멀리서 바라보는데 괜히 마음이 짠~하다. 이 풍경들을 또 언제 보려나…
저녁에는 남편의 친구들과 회포를 풀었다.
행복하게 만취한 남편을 오랜만에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