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면서…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10.02 09:27
  • 호수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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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에 만들어진 “멕시코인들이 사라진 날”(A Day Without a Maxican)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세르지오 아라우 라는 히스패닉 계통의 영화감독이 만든 블랙코미디 영화입니다.

이 감독은 캘리포니아주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멕시코 이주민들이 켈리포니아의 산업현장에서 온갖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임금과 갖가지 차별을 받는 현장을 보면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산업현장의 저변에서 일하고 있는 멕시칸들이 캘리포니아에서 파업을 벌일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상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멕시칸들이 파업을 벌이자, 백인가정의 귀부인들이 자녀들의 아침식사를 위해 그 고운 손에 물을 묻히고 허둥지둥 식탁을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장면들이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실제로 멕시코 이민자들이 2006년 5월 1일을 기점으로 해서 파업을 벌였습니다. 이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5월 1일을 멕시칸 없는 날로 정하고 “No Work, No School, No Selling, No Buying”의 구호 아래 대규모 파업을 벌였습니다. 그 날 하루는 일터도 안가고, 학교도 안가고, 장사도 안하고 물건도 안사고 버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업활동의 저변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노동력과 경제력의 파워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파업으로 미국 사회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벌써 외국노동자들이 3D 업종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산업활동의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비정규직자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돌아봐야 합니다.
너무 경제논리로만 풀어서는 안됩니다. 한 쪽의 입장만을 강조하고 다른 한 쪽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뛰노는 세상을 원하십니다.

어린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해를 입지 않는 세상을 원하십니다. 이웃끼리 더불어 살고, 사용자와 노동자가 더불어 살고, 여야가 더불어 살고, 경상도와 전라도가 더불어 살고, 서울과 지방이 더불어 살고, 남과 북이 어우러져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이어야 하고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어떤 성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성자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밤의 어둠이 지나고 새 날이 온 것을 어떻게 아는가?” 제자 중의 하나가 “동창이 밝아 오는 것을 보면, 새 날이 온 것을 알 수 있지요” 이렇게 대답했지만 스승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가 “창밖을 내다봐서 나무도 꽃도 보이기 시작하면, 새 날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지만 역시 스승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자들이 말할 때마다 스승이 고개를 저으니까 제자들이 되물었습니다. “그럼 스승께서는 밤이 가고 새 날이 밝아 온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았을 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형제로 보이면, 그 때 비로소 새 날이 밝아 온 것이다.”

이 성자의 말속에 이 나라 이 백성이 갖추어야 할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회복할 때 비로소 새날이 열릴 것입니다. 이명박정부나 이 사회의 기득권층이 어떻게 하면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들어 갈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아니, 멀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붙이고 살고 있는 이 광양만이라도 ’더불어 사는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광양의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백성들은 “더불어 사는 삶‘을 시대정신으로 만들도록 힘을 모아 주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 광양은 그야말로 최고의 행복도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