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회 속에서 교회란 - 기독교인으로서 요즘 사회상황을 보며 느끼는 소회 -
[기고] 사회 속에서 교회란 - 기독교인으로서 요즘 사회상황을 보며 느끼는 소회 -
  • 광양뉴스
  • 승인 2020.09.11 17:13
  • 호수 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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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임 광양YWCA 이사
김양임 광양YWCA 이사

먼저 성경과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며 묵묵히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대다수의 교회와는 상관없는 얘기임을 밝히고 들어간다.

역사, 특히 서양사의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다.

 기독교는 흔히권위’, 혹은트러블메이커 역할을 했으며 현재까지도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전자로 하여 후자를 정당화하고자 했던 시도도 있었다.

기독교가 조연에서 벗어나 주연급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왕권과 정권, 소위 기득권과 결탁하면서부터였고, 우리나라는 미군정과 더불어 기독교인이었던 초대 대통령을 등에 업은 시점으로부터였다.

물론 당시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잘된 일일 있겠지만, 이전에 순수하게 신앙을 붙들던 민초들의 애처로운 미담은 옅어지고, 세상의 권력을 행사하는 모양은 마치 아빠의 옷을 입은 아이와 같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권력의 취기(醉氣) 절정에 이를 무렵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나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취한 일부가 남아있는 환골탈태는 요원할 뿐이었다. 직접 권력을 휘두를 없다면 시녀가 되어서라도 말이다.

성경을 왜곡해가며 독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사탄의 세력 , 빨갱이로 몰아갔다.

초대 대통령의 기반이 미군정에 있었던 까닭에 자연스럽게 친미(親美) 반공(反共) 색채를 띠게 되었으며, 이는 그의 지지기반이었던 교회에도 전이되게 마련이었고, 현재의 소위 보수단체를 자처하는 기독교인들의 집회에 미국국기가 등장하고 자기들과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전범국인 일본기까지 들고 나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라의 일에 관심을 갖고 우려를 표하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책무이나 가슴 아프게도 이스라엘이 로마에 지배당하던 시절, 구원자로 세상에 예수를 박은 것은 일자무식한 백성들이 아닌, 성경적 학식으로 칭송받던 율법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그들은 신념이라도 있었지만 작금의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를 구분하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는 것들은 데자뷰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현실정치에 대한 기독교의 참여 정도에 대한 논의는 개인과 교단의 차이가 있으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독교는성경이라는 절대적이고 명확한 기준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단순한 진리에 토대를 두고 있을 뿐이다. 예수가 말한 이웃은 누구였는가? 현재 한국교회는 이웃을 돌아보고 있는가?

오히려 비탄에 빠진 이들을 모함하고 조롱하며, 나아가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마저도 무시하며 사회의 민폐로 자리 잡아가는 교회들의 행태가 정당화될 있을까? 윤리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성직자라 자처하는 자들이 차마 입에 담을 없는 천박한 단어들을 내뱉고, 경찰과 간호사 섬기는 이들에게 침을 뱉는 등의 야만적인 행동들은 논할 가치조차도 없다.

또한 교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 집회에 참석하면 성령의 불을 받아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등의 망언은 기독교의 기본마저도 무시한 이단적 행태이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교회가 직간접적으로 국가에 폐를 끼친 꼴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까지, 이들에 동조하고, 적어도 침묵으로 방관해왔던 소위 교회의 원로(元老) 하는 사람들이 협조를 요청하는 대통령의 면전에 대고대면예배는 포기할 없다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하나님을 오로지 예배당이라는 건물 안에 가두겠다는 편협한 사고이며, 신학적 목회적 역량은 고사하고 객관적 상황인식 능력마저도 상실한 엘리 제사장을 연상케 뿐이다.

종교를 떠나서 우리가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질 배우면서 들었던 인간의 기본만 지켰어도 오늘날 기독교가 이런 모습까지 보이게 됐을까?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지경이 지금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이 마음을 찢으며 엎드려야 때라고 생각한다.

코로나와 장마, 그리고 연이은 태풍, 인간의 힘으로 당장 어찌할 없는 상황에 많은 이들이 절망하고 있다.

지금 교회의 시선은, 우리의 손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누구의 곁에 머물러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