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칼럼 - 편언절옥(片言折獄): 한두 마디 말로 송사를 해결하다
고전칼럼 - 편언절옥(片言折獄): 한두 마디 말로 송사를 해결하다
  • 광양뉴스
  • 승인 2022.10.21 18:18
  • 호수 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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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누가 보아도 공정하고 훌륭하게 판결을 했을 때 비유적으로 쓰는 말이다. 

송사(訟事)가 발생했을 때 어느 쪽이든 억울하지 않게 공정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최고의 석학들이 사법고시(司法考試)라는 어려운 난관을 통과해 이 시대에 판결자로 역할을 한다. 

판사(判事) 검사(檢事) 변호사(辯護士) 모두 사법고시를 거쳐야만 한다. 

송사에 휘말려 재판장을 나오면서 “재판에서는 졌지만 그 사람 판결을 잘하더라.”는 말을 들을 정도 되는 명판관(名判官)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될까. 

한마디 말만 듣고서 대립된 의견을 명쾌히 풀어준다는 이 ‘편언절옥’은 전에도 간혹 명판관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서양에서도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인에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 성경에 등장하는 솔로몬(Solomon)의 명판결을 ‘솔로몬의 지혜’라는 말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보통사람들은 쉽게 생각해 내지 못하는 난제들을 누구나 수긍(首肯)할 수밖에 없도록 판결로 시원하게 가름한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애제자 자로(子路)의 경우를 보자.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 에서도 무사출신으로 성격이 용맹하고 강직한 인물이었다.

 요즘말로하면 어린 시절에는 무식하고 싸움 잘하는 조폭 출신인 것이다. 

 공자학당에 들어오면서부터는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충성스럽고 공자를 가장 근거리에서 잘 모신 인물로 바뀌어 훌륭한 인물로 거듭난 사람이다. 

공자가 자로를 일러 “한두 마디 말을 듣고 송사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유(由:자로의 자)일 것이다”고 했다. 자로는 어떤 일이 있으면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깔끔하게 처리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성격은 거칠지만 충성스럽고 신용이 있었으며 송사를 처리함에는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몇 마디 말로서 공정한 판결을 내릴만한 인물로 보았다. 

공자와 함께 다닐 때도 질문 형식으로 스승 공자가 올바른 길을 택하도록 우회적으로 종용했었다. 

자로는 사심 없이 정무판단능력이 좋았으며 이익보다는 의리를 중요시 하는 능력을 공자가 보았기 때문에 이런 칭찬을 얻은 것이다. 

평상시 행동을 보고 자로에게 말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도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판결이 있었다. 

시골에서 지게를 지고 가던 농부가 다리를 절며 잘 가지 못해 절뚝거려 금방 손에 잡힐 것 같은 족제비 한 마리를 발견했다. 

지게를 세워놓고 족제비를 잡기 위해 몰고 있는데 잡힐 듯 하는 순간 이웃집 개가 족제비를 물어버렸다. 

족제비를 몰던 농부는 개를 따라가 주인에게 내가 거의 잡을 뻔했는데 당신 개가 물었으니 나에게 돌려달라고 항의했다. 

개 주인은 돌려주지 않고 우리 개가 잡았으니 내 것이라고 서로 다툼이 생겨 합의를 보지 못하고 고을 원님을 찾아가 판결을 의뢰했다. 

원님은 자초지종을 두 사람에게 듣고서 가서 기다리라고 하고 시종을 시켜 족제비를 박제(剝製)로 뜨도록 했다. 

껍데기와 고기를 분리한 시종은 따로 두 그릇에 담아 원님 앞에 대령했다. 드디어 농부와 개 주인을 불러 판결을 내린다. 

판결문인즉, 인간은 족제비 고기는 먹지 않는다. 

다만 족제비를 잡을 목적은 꼬리털로 붓을 만들기 위해서다. 붓 중에서는 쥐 수염으로 만든 서수필(鼠鬚筆)과 족제비 꼬리로 만든 황모필(黃毛筆)이 단연 으뜸이다. 

그래서 족제비 털이 필요했고, 개는 껍질은 필요 없고 대신 고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개에게 무슨 붓이 필요하며 인간에게는 족제비 고기가 어찌 필요 하겠는가.

자 판결하겠다. “족제비 고기는 개주인에게 주고 털을 포함한 껍질은 농부에게 주어라” 이 판결에서 패한 개 주인도 내 뜻대로 되지는 못했지만 그 판결 참 옳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에도 이런 명 판결을 즉 재판에는 졌지만 수긍할 수 있는 판결을 기대해 본다. 

이런 판결을 하려면 그 뜻과 용도 쓰임새 등 모두를 잘 알아야 억울하지 않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재판에 패소하고도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대에 따라 잣대가 달라지고 얼마나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것을 보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를 넘어 지금은 무권유죄(無權有罪) 유권무죄(有權無罪)로 변해가는 것 아닌가 우려 된다.

옛날에는 고을마다 잡다한 분쟁들을 해결해 주는 원로(元老)들이 있었다. 조금 서운한 일이 있어도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만 손해가 되거나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각박한 시대가 되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