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반복되는 역사, 언제까지?
[사람과 삶] 반복되는 역사, 언제까지?
  • 광양뉴스
  • 승인 2023.11.10 17:41
  • 호수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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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임<br>.광양ywca이사<br>.국방부/여성가족부 양성평교육진흥원 전문강사<br>
김양임
.광양ywca이사
.국방부/여성가족부 양성평교육진흥원 전문강사

“역사는 반복된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언감생심, 동서양의 인류와 문화를 논할 깜냥을 갖추지 못했으나 단편적으로나마 접하는 역사와 작금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 예로, 얼마 전 예배를 드리다가 문득,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득권에 목이 곧은 인간들의 행태는 똑같다는 생각에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한 사람을 사냥감처럼 표적 삼으면 어떻게 도륙하는지, 그리고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이 얼마나 자유자재로 변형이 되는지 어쩜 그렇게 판박이일까?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과 권력자들에게 외치는 나사렛 청년의 “참 원칙”은 권력에 굴종하고 권위에만 도취 된 그들에게는 신성모독과 발칙함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율법을 입맛대로 변형시키고 조작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이 청년을 옭아맬 궁리를 하는 그들의 치졸한 행태가 전혀 옛날옛적에 있었던 일 같지 않으니 참...

그 중 한 사건, 장소는 성전이었다. 예수께서 사람들과 성경을 얘기하고 있는 자리에 한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간음죄는 혼자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 왜 여자만 끌려왔느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는 예수를 고소할 조건을 얻으려고 남자만 놓아주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또한 이들은 여자를 가운데 세우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가?

둘째,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는 간음죄의 증거로 불충분하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반드시 현장을 목격한 증인이 있어야 했다.

셋째, 고소자들은 율법을 변조했다. 돌로 치는 것은 사실 약혼한 여자에게만 해당하는 처벌이었고 또한 처벌은 여자에게만 아니라 양 당사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넷째,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서 유대인에게는 사형 판결을 집행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께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다면 로마에 맞서는 격이 되고, 반대로 내버려 두라고 했다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몰릴 지경이었다. 그들은 외세에 빌붙고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자신들과 색깔이 다르면 짓밟아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악한 습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표현이 성경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그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탄생하셨다는 것에 대해 그들은 아직도 믿지 않고 있다. 또한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는 그들의 말도 틀렸다. 선지자 요나가 갈릴리 출신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이스라엘인들이 앗시리아에 포로로 잡혀가고 그 땅에 이방인 이주자들이 거주하면서 이 지역을 이방의 갈릴리라 불렀다. 

포로기 이후부터 이방인과의 혼혈 족속이 우세해지면서 순수한 혈통과 전통을 지닌 남부 유대인들은 갈릴리 사람을 경멸하게 되었는데 예수께서는 자기만족과 특권 의식에 빠진 유대 땅이 아닌 어둡고 멸시받는 갈릴리에서 더 사역하셨다는 사실을 아는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종교적인 이야기로 보이면 잠깐 하늘을 보면서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해 보자. “역사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가? 비극이든, 희극이든”, 국가의 존재 이유, 2023년 대한민국은 어디쯤 와 있고 역사는 어떻게 기록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