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떼려다 혹 붙인 광양시
혹 떼려다 혹 붙인 광양시
  • 이성훈
  • 승인 2006.10.22 21:14
  • 호수 1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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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공장 건설이 은근히 우리지역을 돋구고 있다. 광양시가 의지를 갖고 유치에 성공한 니켈공장은 지난 3월 MOU를 체결하고 광양제철소 동호안에 건설할 계획이다.


투자규모만 해도 엄청나다. 연간 3천억원의 니켈공장 매출액은 광양시 1년 예산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게다가 고용인원도 300여명이 되니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것은 자명하다.


니켈공장 유치에 실패한 경북 포항시는 연일 이에 대한 책임론이 거두될 정도다.


그러나 니켈공장은 환경단체의 반대입장 표명으로 지역내에서 반대의 움직임도 있는게 사실이다. 페로니켈을 생산할 포스코 합작법인인 (주)SNNC 측은 “환경설비 투자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지역 환경단체 측에 설명회를 가진 것을 비롯, 수차례 언론 보도를 통해 환경대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환경단체에서도 니켈공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이 있었다. 기자가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환경단체 측에서는 반대 성명서만 표면적으로 내놓았을뿐, 니켈공장을 절대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환경단체 또한 오염대책에 철저히 준비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박주식 광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도 본지를 통해 “오염물질 배출 방지대책에 대한 포스코의 대응방안을 지켜보며, 지역주민들에게 설명회를 통해 환경오염으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를 전파해 니켈공장 건립을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었다.(본지 6월 22일 5면 참조) 태인동 주민들 역시 그동안 그들이 입은 환경오염에 대한 보상 대책을 포스코 측에 묻는 것이었지 니켈공장 반대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환경단체나 태인동 주민들이 발끈한 것은 최근이다. 광양시와 몇몇 지역단체에서 내세운 니켈공장 환영 현수막이 그 이유였다. 이 현수막은 지난달 23일과 24일 광양시를 비롯한 지역단체에서 읍면동 곳곳에 내걸렸다.


동일한 시기에 시와 지역단체가 환영 현수막을 내건 것은 누가 보더라도 시의 입김이 지역단체에 작용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취재에 들어가자 상공과 측에서는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했었다. 또한 현수막 게첨도 상공과 자체의 의견으로 했을뿐 다른 부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답변을 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기자가 이미 상공과에 취재를 했을 때에는 다른 부서에서 먼저 이야기를 듣고난 뒤였다. 결국 상공과는 행여 다른 부서에서 피해를 입을까봐 부서와의 협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또한 이미 읍면동을 통해 지역단체에 협조를 구했으면서도 전혀 지역단체의 환영 현수막과 시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였었다.


문제는 현수막 게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단체 역시 환영 현수막은 얼마든지 게첨할 수 있다. 사안에 대해 찬반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문제는 현수막 게첨 시기와 방법이다.


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니켈과 마그네슘 공장 유치를 위해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만일 시에서 환영 현수막을 게첨했더라면 MOU 체결했을 때 했어야 옳다.


시는 이에 대해 “당시에는 현수막 게첨 필요성을 못느꼈고 지금 반대 움직임이 마치 광양시민 전체의 입장인 것처럼 보여서 공장 건설에 차질을 빚을 것 같아 현수막을 게첨했다”고 말했다.
시는 결국 환영현수막 게첨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반대측의 심기만 건드린 꼴이 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지역단체에도 이런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은 백번 지탄 받아도 마땅하다. 시는 “당시 지역단체에서도 니켈공장 환영 현수막 게첨에 대한 분위기가 있어서 협조를 구했다”고 밝혔다.
시가 MOU를 체결했을때 부터 시민들에게 니켈공장 유치 환영에 대한 분위기를 몰고 가고 환경단체들과 협의를 통해 니켈공장의 환경오염 대책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했으면 지금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혹떼려다 혹붙인 꼴이 되고만 광양시는 모양새가 구겨진 상태로 어떻게 양분된 시민들을 하나로 결집해 낼지 자뭇 궁금하다.
 
입력 : 2006년 07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