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거쳐야 진정한 작품이 되죠
내 손을 거쳐야 진정한 작품이 되죠
  • 이성훈
  • 승인 2006.10.20 16:12
  • 호수 1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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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사 장재영씨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이 있다.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으로 가장 요긴한 부분을 마치어 일을 완성시킨다는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 어느 일이나 화룡점정은 있게 마련이지만 특히 서예나 그림 등 작품에서 이 말의 가치는 더욱더 빛이 난다.

표구사 장재영(51) 씨. 그는 ‘화룡점정’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다. 사람이 화장을 하듯이 작품 역시 표구로써 완성돼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다.

“표구는 작품이 진정한 빛을 낼 수 있게 하는 마지막 과정이지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표구를 거치지 않으면 볼품이 없어집니다.” 표구는 작품을 보존, 보관, 전시하기 위해 족자, 액자, 병풍 등으로 표장하는 기술을 말한다. 또한 낡거나 훼손된 작품의 보완과 재생 작업까지도 포함한다. 의뢰한 작품은 세상에서 단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만큼 정성스럽게 손이 가야 한다.

“전시 작품을 가지고 오는 손님들도 있고 훼손된 채 망가진 작품들을 가져오는 손님들도 있어요. 특히 훼손된 작품들을 원상복구 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신경이 쓰이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훼손된 작품을 함부로 복구시키지는 않는다. 반드시 고객의 동의를 얻은 후에 작업을 시작한다. 장시간 동안 한올 한올 정성스레 다듬고 손질하고 나면 훼손된 작품은 어느새 마술에 걸린 듯 감쪽같이 새 것으로 변신한다.

“훼손된 작품을 가지고 오면서 ‘설마’ 했던 손님들이 복구된 것을 본 후 아주 만족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 없어요. 어떤 손님은 감사의 표시로 종종 과일을 사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보람된 순간이지요.”

장씨는 요즘 표구사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다고 말한다. IMF 이후 표구사들도 하나 둘씩 문을 닫았다고 한다. “IMF로 예술가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죠. 당장 먹고 살기 급급한데 누가 작품을 사겠어요. 그 여파는 당연히 우리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도 문을 닫는 표구사가 늘어나고 있고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표구 작업이 워낙 까다롭고 힘든 일이여서 배우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우리때는 풀 쑤는 것 배우는 것만도 3년이나 걸렸어요. 힘든 작업이죠.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게 어렵고 까다로운 일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십년 표구에 파묻혀 살다보니 장씨의 서화(書畵) 솜씨 역시 전문가 수준이다. 표구를 하면서 이 분야를 알지 못하고는 더욱더 좋은 표구를 제작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표구 못지 않게 서화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이제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줄 정도의 기량을 갖췄다. 장씨는 그동안 국제 문화미술대전 특선 2회를 비롯, 제51회 개천예술제 입선, 전라남도 서예전람회 특선 2회 등 서각, 서예에 화려한 경력을 지녔다.

그는 수묵화 한점을 보여주더니 그림 감상법을 세세히 가르쳐 준다. “우리가 단순하게 그림을 보는 것보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면서 그림을 감상한다면 더욱더 작품을 보는 맛이 깊어집니다.” 손님들이 원하면 서화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준다는 장씨는 보면 볼수록 서화의 세계는 오묘하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장씨는 지금도 전시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찾아간다. 수많은 작품을 보면서 그 세계에 몰입하며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작품을 많이 봐야만 표구에 대해 더욱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술가들의 작품 한 가운데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표구와 서예, 서각, 그림에 대한 공부를 하고싶다는 장씨는 은은한 풀내음이 묻어나는 작업복을 걸치고 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서서히 작업실에 들어섰다.  

 
 
입력 : 2005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