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경색되는 남북관계를 우려한다
갈수록 경색되는 남북관계를 우려한다
  • 한관호
  • 승인 2008.12.11 10:31
  • 호수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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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관호(바른지역연대 사무총장)
1980년대, 경기도 연천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6개월간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된 지 6개월여, 첫 휴가를 앞두고 마냥 가슴이 설레어 잠을 설쳤다. 보초를 설 때면 고향의 해수욕장 풍경이 눈앞을 오가 이미 마음은 집에 가 있었다. 


그런데 불길한 소식이 들려왔다. 한강에서 물갈퀴가 발견됐고 침투한 간첩이 다시 북으로 넘어가려고 북상중이라고 했다. 비상이 걸렸고, 휴가는 물 건너갔다. 그날부터 2인 1조 매복이 시작됐다. 한 여름이라 사흘들이 비가 흩뿌렸고 참호까지 물이 차 군화 속까지 질퍽거렸다. 모기는 판초 우의까지 뚫고 피를 빨았다. 그렇게 힘든 나날이 계속되자 우린 서서히 지쳐갔고 제발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소원했다.


그즈음 전우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과연 눈앞에 간첩이 나타나면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것인가. 처음 애기가 나왔을 땐 모두들 답하기를 꺼려했다. 인간을 총으로 쏴 죽인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우리는 제발 내 앞에만 나타나지 마라며 간절히 빌었다.


헌데 한 달여 매복이 계속되자 전우들의 분위기가 바뀌어갔다. 하나, 둘, 총을 쏠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어갔다. 며칠 후 산에 잠복해 있던 그는 우리가 아닌 다른 부대 병사들에게 사살됐고 작전이 종료됐다. 그리고 고대하던 휴가를 나온 필자는 친구들을 만나 심하게 뻥을 치며 그날의 무용담을 떠들어댔었다.
이제 다시금 자신에게 묻는다. 그때 상황이 재연된다면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


남해신문 기자 시절, 보도연맹 사건을 취재했다. 우연히 어느 식당에서 만난 거제에 사는 향토 사학자 한 분이 남해에서도 집단학살이 있었으며 자신이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필자도 어린 시절 그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이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잡아다 복골이란 골짜기에서 죽였다고. 헌데 그 사학자는 총 살 당한 사람들 대부분이 선량한 양민들이며 보도연맹은 정부에서 만든 조직이라 했다.


보도연맹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일제에서 해방된 후 이승만 정부는 좌익사상을 가졌다 할지라도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그 전력을 문제 삼지 않겠다며 가입을 독려해 만든 조직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가입을 권유하자 일선 파출소들에까지 할당이 떨어졌고 좌익 사상을 품었던 이들과 작은 연이라도 있으면 앞 다투어 가입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그리곤 보도연맹원임이 자랑인 냥 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이 남침하자 보도연맹원들이 북과 합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죄도 없는 이들을  재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수 십 만 명을 잡아다 죽였다. 남해에서도 복곡에서 33명이 총살됐고 11명은 포승줄에 묶여 총알을 맞은 뒤 강진만 바다에 수장됐다.  


3개월간 보도연맹과 관련된 70여명을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와서 보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다. 빨갱이 가족이란 눈총에 고통스럽게 살아온 세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도 임용되지 못해 꿈을 접어야 했던 그 한 서러움을 절절히 토해냈다. 그러면서 아직도 불안한 눈빛을 보이던 그들, 전쟁이 가져온 보도연맹 사건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국민을 죽인 참담한 비극이었다. 


남북 관계가 갈수록 경색되고 있다.
북은 특히나 민간단체에서 날리는 삐라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보이며 60년 만에 어렵사리 이어놓은 경의선을 끊었다. 금강산 길이 닫치고 개성공단 사업이 중단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남북 상황이 이리 돌아가고 국민들 여론마저 우호적이지 않자 다행히 민간단체들이 당분간 삐라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리 중차대한 시점에 정작 한나라당은 북한 주민 정보 전달 비용으로 7억원을 배정하고, 그중 3억원을 북한으로 보내는 삐라나 소형 라디오에 쓰자는 통칭 북한 인권법을 발의한다고 한다. 북한이 극도로 싫어하는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비용을 아예 정부가 지원하자는 것이다. 싸움을 말려야 할 시국에 더 큰 싸움판을 충돌질 하는 꼴이다.


해서 물어보자. 분단이 가져온 이 불행한 역사들을 굳이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주어야 하겠는가. 
어느 학자가 ‘북한의 교육받은 질 좋은 인력, 그리고 그들의 섬세한 손길, 그리고 개발 가능한 저가의 광활한 토지, 자원, 유리한 물류’가 있으니 북한과 공생하며 경제를 살리자고 했다.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다. 하지만 이는 접어 두고라도 독도가 우리 땅이듯 북녘도 우리 민족의 영토로 볼 수는 없는가. 그러면 그기 사는 사람들도 우리 이웃이지 않은가. 먼 먼 미국을 우리 이웃이라고 하면서 정작 본디 이웃은 내치려고만 드는가.  


제대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어쩌다 군대시절 꿈을 꾸게 된다.
비가 내리고 모기가 물고 나는 충혈 된 눈으로 참호에서 매복을 서고 있다. 전우와 적이 나타나면 총을 쏴 죽여야  하느냐며 갈등한다. 그러다 종국에는 내가 쏜 총알이 날아가고 한 인간이 죽어간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자식들은 그런 악몽을 꾸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