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한 45년, “매화는 나의 아들 딸”
자연과 함께 한 45년, “매화는 나의 아들 딸”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1.10 10:12
  • 호수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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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쌍리 매실명인
 
‘슬플 때나 괴로울 때 같이 웃고 울어주던 내 딸들아
꽃샘추위와 봄비에 꽃잎마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너의 눈물이
이 애미의 가슴을 한 없이 적시는 구나.
아가들아,
춥다고 네가 울면 이 애미 발길이 돌아설 수 없이 눈물이 앞을 가리니
따뜻한 햇볕이 너희들을 보듬어 줄 때까지 울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우내 모진 추위를 잘 이겨낸 내 딸들아,
애미의 손이 시리고 굳어서 보듬어 주지 못할 만큼 추운 이 봄날의 꽃샘추위가 오면
이 애미는 새벽같이 버선발로 뛰어나가 네 꽃잎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나의 눈물이 내 가슴을 한 없이 적시곤 했지.’
<사랑하는 나의 꽃잎들 中 -홍쌍리>
 
한평생 흙과 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그의 눈과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흙과 꽃이다. 한겨울에 꽁꽁 언 땅과 가지만 앙상한 매화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의 마음도 함께 언다. “내는 이렇게 따뜻한 데서 이불 덮고 사는데 우리 딸들은 얼마나 추울꼬…” 그는 모진 겨울 창밖을 바라보며 꽃 천지를 상상하고 있다.

매실 명인 홍쌍리(65ㆍ청매실농원 대표) 씨. 그는 이미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광양매실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는 인물이다. 광양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봄을 알려주는 매화이다. 우리는 봄이 오기도 전에 매화마을을 드나들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홍쌍리 명인이 매화와 인연을 맺은 것도 어느새 45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 간의 고생을 말해서 무얼 할까. “지금은 초창기 고생담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지만 당시 심정과 고생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겠어요.”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과 함께 말못할 심정을 토해낸다.

홍 명인이 다압면은 매화천국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에 살고 있던 그는 65년 결혼 후 광양에 정착했다. “기차, 버스도 없는 이곳으로 비탈진 산속 초가집으로 이사 왔다”는 홍 명인은 “비록 비탈진 산골이었지만 지리산과 백운산이 있고 눈앞에는 섬진강 물결이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부산에서 봤던 벚꽃 축제를 기억하면서 이곳에도 꽃 천국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설중매(雪中梅)가 있지 않습니까? 벚꽃은 4월에 피는데 왜 매화가 아닌 벚꽃이 봄을 대표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매화동산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산비탈에 천국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지요.”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당시 이곳에는 밤나무 1천 그루와 매화나무 2천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광양 밤은 하동장에 내다팔면 고가로 팔렸기 때문에 수입이 꽤 짭짤한 편이었다고 한다. 고소득을 올렸던 밤에 시아버지가 정성을 쏟은 것은 당연했다. “그때는 매실에 대한 효능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저도 몰랐지요. 그냥 꽃이 좋아서 이곳을 매화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홍 명인은 밤나무를 정리하고 그곳에 매화를 심기 위해 시아버지인 김오천 옹을 간곡히 설득해야 했다. “시아버님이 ‘꽃이 밥 먹여 주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냥 꽃이 좋아서 꽃동산을 만들려한다며 설득시켰죠. 당시 이웃들에게 시아버지를 이기려고 한다는 등 온갖 사연이 많았어요.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비탈진 이곳을 매화마을로 가꾸려고 하니 노동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지금처럼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일일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하루하루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홍 명인에게 ‘꽃과 흙, 매실’이라는 보석같은 자식들을 안겨줬다.
 
자연과 한평생…고스란히 시로 읊어
 
“물동이를 이고 동산에 가는데 매화나무에 꽃이 피어 있으면 잠시 멈춰서 꽃향기를 맡으면서 쉬었다 갔었죠. 어느 날 매화 향을 맡는데 꽃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엄마, 울지 말고 나랑 같이 살아’하구요. 당시 고생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그 고생을 꽃들이 다 아는 듯이 살며시 속삭여주는 거예요.”
홍 명인은 이후 나무와 꽃, 흙과 대화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매화마을을 조성하기까지 모진 고생을 했지만 하루하루 자연과 이야기 하면서 고단함을 잊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일을 하면서 혼자서 많이 중얼거립니다. 꽃과 이야기 하면서 하루를 보내지요. 이른 새벽에 동산 주변을 거닐다보면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더욱 더 여실히 느낍니다.” 아침이슬을 영롱히 머금은 꽃을 보고 있으면 이만큼 아름다운 보석이 없다고 한다. 한여름 더위에 지칠 때는 잠시 일손을 놓고 풀밭에서 꽃반지, 꽃왕관을 만들면서 자연과 속삭인다.

그는 자연과 대화를 나누면 항상 메모를 해둔다. 홍 명인이 수십 년간 자연과 대화를 나눴던 메모는 이제 곧 시화집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나는 시에 대해서 배운 적도 없고 한 번도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말에 홍 명인은 손사래를 쳤다. “그냥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담은 게 차곡차곡 쌓였다”는 홍 명인은 시집이 현재 교정 중에 있으며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연에 욕심 부려서는 안 돼
 
홍 명인이 그동안 매실에 심혈을 기울인 댓가는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지난 1996년 새농민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국무총리상ㆍ대통령상 수상(가공식품 부문), 석탑산업훈장 포상, 신지식농업인 선정, 광양시민의 상 수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홍쌍리 명인의 매실 성공기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지금도 농업인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자주 강연을 갖는다. 그는 강연 자리에서 절대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 ‘자연과의 일체’다. 농사를 짓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농사를 지어야지 경제적 논리만을 가지고 자연을 이용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게 홍 명인의 설명이다. “사람들이 물어봐요. 이곳에 왜 이렇게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오느냐고…해법은 농사꾼의 마음가짐에 있어요” 그는 “흙은 나의 밥이요, 개울물은 숭늉이며 산천초목은 나의 심장이다”며 자연과의 일체를 주장한다. 자연이 한 몸일진대 자연을 상처내서 뜻을 거스르게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 홍 명인의 주장이다. 깨끗하게 수확한 농산물을 손님들에게 베푸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는 3월 8일 다압면 일원에서 열리는 광양매화문화축제는 올해로 12회째를 맡는다. 축제 기간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100만 명 정도. 다압면에는 축제기간이 되면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연일 북새통이다. 그러나 광양시를 비롯한 매화문화축제 위원들은 축제와 관련해 공통적인 애로점이 있다. 개화시기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그것. “우리나라의 기후는 전통적으로 겨울철에는 삼한사온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요즘은 도저히 개화시기를 종잡을 수 없네요” 홍 명인은 “어느 해는 축제 기간이 너무 춥다가 어느 해는 너무나 화창해 매화가 서둘러 개화하기도 한다”며 “개화시기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이것도 하늘의 뜻이다”고 순응했다.   

매화마을에 관광객들이 하룻밤 머물고 갈 숙소가 없다는 것도 커다란 아쉬움이다. 홍 명인은 “유명한 분들이나 관광객들이 이곳에 오면 가장 애석해하는 부분이 숙박 문제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원에 매화와 어울리게끔 한옥형태의 숙박시설을 짓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움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홍 명인은 “다압에서 꽃 구경하고 돈은 인근 지역에서 벌어들이는 것이 현실이다”며 광양시가 매화문화축제를 소득과 연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숙박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명인은 이웃과 함께 나눠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고 했다. 지금껏 그는 매실을 이용해 농축액,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 갖가지 상품으로 개발했다. 자연식을 고집하는 홍 명인은 해마다 고추장, 된장, 김치 등을 담가 독거노인이나 지역 사회복지시설에 기증한다. 자연에서 받은 은혜는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게 홍 명인의 지론이다. 홍 명인은 이곳에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학생들이 마음껏 글 쓰고 그림을 그리는 곳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이제 서서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는 홍 명인은 두 시간 가량의 인터뷰가 끝난 후 또다시 일할 채비를 갖춘다. 낮에는 천상 농사꾼으로, 밤에는 자연과 나눈 대화를 정리하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홍쌍리 명인. 매화를 머금은 듯 화사한 미소를 짓는 홍 명인은 이제 한 달만 지나면 보석같은 아들, 딸들이 세상에 나와 관광객들을 맞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