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통일기원제를 다녀와서
백두산 통일기원제를 다녀와서
  • 광양뉴스
  • 승인 2010.09.27 09:31
  • 호수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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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열하일기-④ (마지막)

김정태 의원
중국에 들어온 지 3일, 처음으로 날씨가 맑았다. 좋은 일정이 기대된다.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7시 20분에 버스는 집안으로 출발했다. 통화에서 집안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심산유곡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산자락과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골짜기의 연속이었다. 구절양장 길을 돌아 고갯마루에 이르니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이 있는 도시 집안의 입구임을 알리는 대문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먼저 광개토대왕의 능에 들렸다. 무덤을 축조한 이래 수차례의 도굴을 겪어 누구의 무덤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비석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거대한 무덤은 하나밖에 없어 추정이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판단된다. 능에서 내려오는 길에 광개토대왕비에 들렸다. 거대한 규모에 우선 놀라고 정교하면서도 힘찬 서체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록으로 확인이 가능한 역사를 돌에 새겨 선물해준 고구려 조상들께 고마운 생각이 든다. 능을 조성하고 비석을 만드는 과정에 수많은 민초의 고된 노역이 따랐으리라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도 없진 않으나 그 노역이 오로지 권력의 강제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왕에 대한 아들 장수왕의 효성과 백성의 추모의 마음도 어우러져 있음이 느낌으로 다가왔다.

외국의 거대한 조형물을 보고 다소 부러운 느낌을 가진 우리로서는 비록 지금은 우리의 강역은 아니나 분명한 우리선조의 거대한 조형물이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멀리 내다보이는 장수왕의 능도 그 조형미가 보통의 솜씨를 넘는다. 지금은 몇 군데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이 들었다.

비석을 뒤로하고 고구려의 묘중에 유일하게 벽화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오회분 4호묘로 이동했다. 오회분의 오는 무덤이 다섯 개란 뜻이고 회는 투구를 뜻하는 말이다. 투구를 엎어 놓은 듯한 모양의 5개의 무덤 중 4번째 무덤이란 뜻이다. 묘안 천장을 둘러 그려진 고구려의 벽화를 직접 육안으로 보는 느낌이 매우 새로웠다. 신의 자손이라는 고구려인의 긍지와 죽은 자의 편안한 내생을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아로새겨진 걸작이었다.

환도산성을 조망하리라던 여정을 바꿔 우리는 압록강으로 향했다. 홍수를 만난 압록강은 황토 빛이었다. 그리고 강 건너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북한 땅이 있었다. 거의 산 정상까지 개간하여 배고픔을 이기고자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는 다락 밭의 모습은 차라리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나무가 자라야할 산을 개간한 까닭에 조그마한 비에도 큰 홍수를 빈번히 만나 여름 장마철에 북한이 큰물난리를 만나는 장면을 가끔 보게 되는데 그 원인이 아닌가 싶다.  땅은 척박한데다 비료와 농약, 그리고 좋은 종자가 부족한 탓으로 북한 옥수수의 작황은 중국에서 지겹게 보았던 키 큰 옥수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좋지 않았다. (중국의 옥수수가 큰 이유는 옥수숫대 하나에 옥수수 하나씩만 재배하는 까닭이다)

북한과 중국 사이에 연결된 다리가 모두 3개가 있는데 하나는 그 유명한 단동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조중우호교이고 둘째는 두만강을 가로질러 북한의 종성과 중국의 도문을 연결하는 다리이고, 마지막이 바로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 집안과 북한 중공업의 중심지 만포시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두 개의 다리는 직접 보았는데 집안과 만포사이의 다리는 직접 보지 못하였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다리 하나에 기차와 자동차, 그리고 사람이 통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구조가 나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단동과 심양, 통화와 백두산 그리고 집안과 압록강을 아우르는 여정 속에 아쉬움과 다짐을 새기고 우리 일행은 귀향길에 올랐다. 당대에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민족사에서 가장 의미 있고 기념비적인 사건을 이루고 경험하는 감동을 느끼게 될 행운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후대에게 자랑스러운 조상들로 영원히 기록될 가슴 떨린 일이다. 통일은 감성적인 방법과 당위적 구호를 넘어 상대 존재에 대한 인정과 조금 다름에 대한 아량,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는 세련된 접근 등 말 그대로 유리알을 다루는 심정으로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통일은 남과 북 양대 축을 넘어 민족의 수난기에 가장 고통 받았던 중국의 조선족, 연해주의 고려인들까지 포함하는 문화와 경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존재감과 저력, 그리고 우리와의 동질성을 느끼는 데 가장 좋은 답사 코스는 압록강과 백두산임을 추천하며 기행이야기를 마친다. 함께 했던 일행들의 따뜻한 배려와 못난 글에 시간을 할애해 주신 광양신문 독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