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이야기
웅변이야기
  • 광양신문
  • 승인 2006.10.09 10:49
  • 호수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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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종 렬 목사 / 마하나임커뮤니티교회
아마도 그게 6월쯤에 있었던 일인듯 합니다. 호국 보훈의 달이라고 해서 6월이 되면 학교에서 웅변대회등을 열곤 했었습니다. 저학년때에는 그저 형 누나들이 하는 것만 그냥 봐오다가 막상 그 웅변을 해야할 학년이 되었을때 그렇게 유창한 이야기며 웅변거리들이 어떻게 지어지고 만들어 졌는지 신기하리만치...

난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다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산간 오지에 살았던 제게 웅변도 낯설거니와 어떤 도덕적인 이야기와 반공, 통일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이야기들 외에는 그리 뭐 딱히 웅변할꺼리도 없었지요. 그래서 웅변 원고를 써오라는 선생님의 재촉에도 도무지 원고지 한두장을 채워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잘 살아 봅시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누구의 멘트?)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훌륭한 사람 될래요!"
뭐 이런 이야기 말고는 더 무엇을 이야기 한답니까?
그리고 "이 연사 강력하게 강력하게 외칩니다!"

두 손 들고 외치는 것 까지는 좋은데 구구절절히 설득력을 가지고 내용 있는 이야기를 직접 만드는 일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전 학년이 하는 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난감해 하는 저에게 선생님이 웅변원고가 적힌 책을 한 권 주셨습니다. 책을 줘도 고르는 일이 왜 그리 힘들었는지... 간신히 하나 고른 원고를 그대로 웅변을 하기로 하고 열심히 웅변을 하고 내려온 저에게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너 10월 유신이 뭔지나 아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지만 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웅변 원고로 웅변을 했던 것입니다. 박대통령 서거일에 어머니랑 동네 어르신들이 라디오를 들으시면서 눈물 흘리실 만큼 당시 시골에선 그 일에 대한 이의 제기는 감히 생각도 못할 시기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유신이 뭔지 무얼 알았겠어요. 아마도 선생님은 무척 난감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무지한 시절의 이야기 되돌이켜 보니 그냥 웃음만 나옵니다. 지금은 누구를 만나도 가슴에 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껍데기만 요란한 빈말만 하는 그런 웅변같은 대화 말고 가슴에 아로 새길 수 있는 잔잔한 감동이 있고 삶이 묻어나는 그런 이야기 함께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입력 : 2005년 06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