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아! 니가 아무리 더워도 내 행복을 뺏진 못해
여름아! 니가 아무리 더워도 내 행복을 뺏진 못해
  • 정아람
  • 승인 2012.07.30 09:49
  • 호수 4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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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모으며 폭염을 이겨내는 서종구 어르신
뜨거운 태양이 내리쫴도 그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

33도가 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한 여름 무더위를 거뜬히 이겨내는 한 남자가 있다.

삼십대 청춘도 아닌 이제 낼 모레면 여든을 바라보는 서종구(78)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서 어르신은 길호마을에서 나고 자란 광양 토박이다. 자녀들은 다 시집, 장가보내고 지금은 아내, 손주와 함께 도란도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그는 왜 오토바이를 타고 중마동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는 걸까?

카리스마 넘치는 밀짚모자를 쓰고 잠시 멈춰선 서 어르신은 널브러진 박스를 곱게 접어 오토바이에 싣는다.

그는 “이건 그냥 보통 박스가 아니야”라며 “이 속엔 고기 먹으면서 행복하게 웃는 우리 아내가 있고 우리 가족의 행복이 있다”고 사연을 소개했다.

서 어르신이 박스와 신문 등을 줍고 다닌 지 올해로 2년째. 박스를 줍고 다니는 시간이 삶의 낙이란다. 땀흘리며 하나둘씩 모은 폐지를 팔아 반찬거리는 물론, 손주들 용돈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일하고 있다는 즐거움에서 얻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런 행복 때문에 요즘처럼 무더위도 폭염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서 어르신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지만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여름이 아니면 이 작은 그늘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요즘 현실 아니냐”며 “모든 것에는 뜻이 있다는데 하늘에서 폭염을 내리는 것도 다 뜻이 있을 것이다”고 여유를 보였다. 

50년 전 골약동에서 잠시 공무원을 했었던 그는 공무원을 그만 둔 후 부동산에서 일했었다. 하지만 오래하지는 못했다. 당시 부동산에서 일하면서 조금이라도 땅을 더 팔기 위해 남을 속이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

서 어르신은 “종종 손님들에게 과장도 하고 거짓 정보를 흘렸던 기억이 항상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라며 “남을 속이고 돈을 번다는 사실이 삶을 피곤하게 했다”고 속마음을 꺼내 보였다.

서 어르신은 지금 폐지를 모으면서 부끄럽던 과거를 조금이나마 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7살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서 어르신. 하지만 그의 아내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하다 척추를 다친 사고를 당했다.

당시 사고 후유증으로 아내는 지금까지 허리를 제대로 필 수 없다고 한다.

아내는 장애로 인해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장애인으로 판정받아 다른 일자리를 찾고 싶었지만 판정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굽어진 아내 허리를 보고 있으면 한평생 고생만 하고 있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내, 손주와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낙이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한다.

현재 광양문화원 회원으로 있으면서 가끔 시를 쓰기도 하는 그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동네 구석구석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