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박두규 자유기고가
  • 광양뉴스
  • 승인 2012.12.24 09:26
  • 호수 49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간척지 옥토가 산업단지로 된다는데(광양읍 무선 신촌 해창 삼성 부흥 세승 신두 해두 마을)

황숙현 공적비, 뒤에는 간척지 논이다.

  “선생의 선견지명과 거룩한 애국 애향 정신으로 향토 개발과 농업의 근대화를 이룩하셨음을 흠모하고” 신촌 마을과 세풍 간척지 입구에 있는 ‘민의원 황숙현 공적비’ 한 구절이다.

1957년 광양만 간척사업이 완공되고 봉강 저수지를 설치하면서 광양 제일의 들판에 신촌, 삼성, 부흥 마을이 들어섰다. 이 옥토를 가로질러 도로가 나고 산업단지가 개발될 계획이다.

너른 들판처럼 넉넉한 마을
  무선은 왼쪽의 북뫼와 오른쪽의 짓대골 사이에 춤추는 곳이다. 신촌은 외싱잇고랑에 들어섰다. 해창은 봉정, 중몰, 해창으로 나뉜다.

봉정은 새미께라는 큰 샘이 좋아서 봉황을 더했고, 중몰(中閭)은 부흥의 안골(內閭)과 해창 사이에 있다는 뜻이며, 해안가의 길을 돌고 돌아서 생활한다는 ‘돌고지’가 조창이 들어서서 해창으로 변했다. 삼성(三城)은 대섬, 유자섬, 뱀섬이 간척사업 후 육지가 되자 마을을 이뤘다. 유자섬에서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유물이 나왔다.

  부흥은 부흥과 내려로 구분한다. 부흥은 새 길이 나면서 형성된 부자 마을이고, 내려(內閭)는 안골이며 내려동이라고도 했다. 세승은 외얏골에서 옮겨온 마을이다.

신두는 신풍 또는 신풍쟁이다. 신풍과 해두를 합하여 한 때 신두라 한 것이 분리 된 뒤에도 쓰인 것이다. 세풍리가 세승과 신풍의 이름을 딴 것이므로 신풍을 되살려야겠다. 해두는 갯벌에 게가 많던 곳인데 게의 머리에 해당된다고 게물돔이라 했다.

전통과 인심을 지키는 사람들
  신촌 문영근(73) 씨는 간척지 2구간을 분배 받아 들어왔으나 농지개량조합으로 회수당하여 재분배 받기까지의 사연이 많다.

60년대 장로교회 선교부에서 판잣집을 30여 호 지어준 마을인데 산단 지정으로 부동산 투기 바람을 겪었다. 봉정 추현욱(88) 씨는 6.25 사변 중 입대하여 최전방의 포대에서 근무했다. 해창 풍물단에서 북을 치며 남도예술제 최우수상도 받았지만 20년 전부터 풍물이 사라졌다.

중몰 최영오(64) 씨는 정미소에 자동화 설비와 저온창고를 마련하여 쌀 품질을 높여 농수산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봉사활동도 적극인데 지금은  광양읍 농촌지도자회 회장이다. 임양광(60) 씨는 서울에서 귀촌하여 재래식 된장을 만드는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해창 김기태(63) 씨는 당산의 팽나무 잎이 한 물에 올라오면 모내기도 한 물에 끝내고 잎이 두 번 피면 가물어서 모내기도 나눠서 하게 된다며, 가장 많은 벼농사를 한다.
 
삼성 서일주(63) 씨는 길도 없는데 들어와 마을을 가꾸며 농사의 최적지로 삼은 곳에 대한 애착을 버릴 수가 없다. 십여 년 동안 준공업지역으로 묶여서 직불금도 적게 받고 양도소득세를 내야하는 피해는 물론 언제 이주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므로 빠른 결정을 요구한다.

세승 박봉수(67) 씨는 순천철도청에서 정년을 한 뒤 이장이 되었고 11년부터 이장단협의회장으로서 백운산 지키기, 3시 통합 반대, 불산 공장 저지 등의 운동에 적극 나섰다. 세풍 이장들은 산단 추진이 어려우면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신두 김신자(71) 씨는 밭농사를 지어 두부, 묵, 조청 등을 잘 만들었다. 지금도 부각을 주문하면 만들어 주고 명절 때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해두 김선호(62) 씨는 8대째 대를 이어 복합영농을 한다. 순천 신대지구와 경계지역에 살기 때문에 농지정리, 하천정비 사업 등이 추진되지 않아 소외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