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 여전히 애매합니까?
사람과 삶 - 여전히 애매합니까?
  • 광양뉴스
  • 승인 2021.05.28 18:06
  • 호수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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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임
광양YWCA 이사

여전히 애매합니까?

“그 성희롱이라는 것이 영 애매합디다. 잉~!”

어떤 모임에서 함께 식사하던 두 남성의 말이다. 참고로 나와는 30여년 지기인 이분들은 지금까지 친밀하고, 신뢰 관계에 있으며, 대립적이거나 갈등 상황이 한 번도 없었던 분들이다.

한 분은 대기업의 꽤 높은 직책에 있고 또 한 분은 택시운전을 하시는 분인데 평소처럼 화기애애한 가운데 한 분이 격의 없는 농담을 하길래 내가 불쑥 “지금 그 말씀, 제가 문제 삼으면 성희롱인 거 아시죠?”했더니 한바탕 웃고 난 후에 성희롱이 참 애매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현재 모든 사업장에서는 매년 1회 이상 성희롱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분들도 성희롱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완전히 수긍하지는 못하겠다는 태도였는데 즉, 별다른 의도 없이 했던 말과 행동이 상대방의 기분이나 느낌에 따라 범죄로 취급된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얘기였다.

그때 나의 대답은 대부분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권력과 위계에 의해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이며 상대방이 불편해하거나 거부 의사를 밝혔을 때, 즉시 사과하고 해당 행위를 중단하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직장 내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사표현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와 함께...

그리고 오래 된 기억 하나.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조용하고 경치가 좋아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많이 놀러오곤 했는데 한 번은 읍내에서 군청 직원들이 야유회를 왔다.(지금으로 말하면 회식?)

거기엔 작은 폭포가 있고 동굴과 계곡 등 숲이 참 예쁜 곳이었는데 그날 심부름을 갔던 나는 무척 뜨악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돗자리를 깔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준비해 온 음식과 그릇들을 배치하던 직원 언니들 뒤에 서있던 나이 지긋한 남자직원이 손으로 한 언니의 엉덩이를 원을 그리듯 세 번이나 쓰다듬더니 툭툭 치면서“너 궁둥이 참 좋다~응?”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옆에 서 있던 나는 ‘이게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무척 황당했었는데 지금까지도 어이없고 화가 나는 건 주위에 있던 다른 남녀직원들이 왁자하게 웃었다는 것이다.‘어떻게 저래? 저 언니의 오빠나 아버지가 옆에 있었어도 같이 웃을 수 있어? 아니, 저런 짓을 할 수가 있었을까? 지금 저 언니 심정은?’ (그리고 전라도 욕 조금...)

지금도 그 사람들의 얼굴은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행위자가 입었던 점퍼 색상이나(소매를 두 번 접었던 것까지) 직원 언니의 바지 색상과 그 옆에 있던 그릇들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충격이 어지간히도 컸나보다 싶어서 이 글을 쓰면서도 새삼 분노가 치민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성희롱이 애매하다는 사람들에게 묻고자 한다.(장난이었노라고... 친밀감 표현이고 농담이었노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장난이나 농담이라고 했던 행위를, 다른 사람이 내 딸에게, 엄마에게, 여동생에게, 내 아내에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지... 또 아버지가, 남편이, 남동생이, 내 아들이(예를 들어 군대에서라든지) 그런 일을 겪어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답변을 해 보기 바란다.

여전히 애매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