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80년 5월 광주의 또 다른 지향
[특별기고] 80년 5월 광주의 또 다른 지향
  • 광양뉴스
  • 승인 2021.06.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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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철 강사
광양 5.18 민중항쟁기념행사준비위

최근 필자는 광양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5.18 강사단 일원으로 학교를 찾아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알리는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진행되었고,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는지 등 학술적으로 검토되고 실증된 내용들을 토대로 항쟁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수업의 기본틀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안병하 도경찰국장은 시민군에 발포하라는 신군부의 명령에 보복을 무릅쓰고 이를 거부했다.

그는 직위 해제됐고 신군부에 끌려가 고문까지 받았다. 후유증을 앓던 그는 결국 8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숨을 거뒀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나치 세력 100만명 가량을 학살했던 트레블링카 수용소장 프란츠 슈탕글 (Franz Stangl)은‘나치(Nazi)’라는 광기어린 집단체제의 학살 명령을 받고 양심보다 명령에 순응하는 선택을 했다.

나치즘이나 5.18 신군부의 예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증오의 이데올로기가 삼켜버린 공동체나 국가에게 얼마나 불행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결국 단 한사람이라도 수용소장의 자리를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도덕률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잠재적인 국가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길은 부당한 명령을 잉태할 수 있는 환경을 줄여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것은 풀뿌리 시민사회가 합리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유지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그의 명저‘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정치경제 체계들을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생활세계’에 정박시켜야 함을 역설했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 시스템인‘체계’가 시민들의 의사소통 장소이자 문화 지식의 저장고 역할을 담당하는‘생활세계’를 일방적으로 주도하면‘체계’에 의한‘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문제가 발생하며 이는 여러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연결된다고 진단했다.

자본권력의 힘으로 조직된 경제체계와 정치권력의 힘으로 조직된 정치체계에 갇혀 그 힘에 억눌리면 사실이 아닌 말, 그릇된 말, 진실하지 못한 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왜곡된 의사소통 상황이 벌어지고 이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큰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국가의 기능 시스템인 체계는 국민의 일반의지를 구현하는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이 포괄적 합리성에 기반한 공론장에 정초하지 못할 때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을 도구화하거나 저항하는 세력들을 살상하는 도구로 오용될 수 있다.

깃발 들고 앞장 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이데올로기적 무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훗날 우리 또는 후손들이 마주하게 될 가혹한 ‘양심의 시험’ 앞에서 부끄러운 선택을 해야 하는 시대적 환경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그것이 민주주의 발전이고, 역사의 진보라 믿고 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배우기’보다‘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배워야 한다’는 역사교육의 또 다른 지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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