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동, 포스코 제시안 투표 결정 그 이후
태인동, 포스코 제시안 투표 결정 그 이후
  • 광양신문
  • 승인 2006.10.12 16:37
  • 호수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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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대책위원들 사퇴시키고 협상안 무효 선언
비상대책위원장에 배 훈씨 추대, “다시 시작하자” ▲ 이날 회의에 주민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 보여주는 장면.
태인동환경개선주민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3일 포스코 지역협력사업 제시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태인동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속속 대책위 사무실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주로 1구 도촌마을과 2구 장내마을 부녀회원들이었다. 이들은 맞이한 사람은 대책위의 결정을 끝까지 막으려 했던 배훈 부위원장이었다. 이들 주민들은 찬성표를 던진 대책위원들을 불러오라며 호통을 쳤다. 이들은 대책위원들의 결정은 물론 그런 결정을 한 대책위원들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며 대책위원들이 나와서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대책위원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농성은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지만 대책위원들은 이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 대책위원들의 설명에 쏠린 주민들의 표정. 사흘째인 25일 오전 주민들은 다시 대책위 사무실에 모였다. 이날은 김재신 대책위원장이 미리 나와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태인동 주민건강실태조사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포스코와의 협상과정을 죽 설명하면서 “협상 아니면 법적인 대응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서 “29일 오후 2시 태인동사무소에서 회의를 열어 다수의 주민들이 물러나라고 하면 찬성한 대책위원 15명 모두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주민들의 눈과 귀가 사퇴를 거부하는 대책위원에게 집중되고 있다. 마이크 쟁탈전도 치열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말과는 달리 29일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통별로 통장이 주민의 의견을 묻는 방식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약속된 회의가 열리지 않자 주민들은 다시 대책위 사무실로 가 왜 회의를 열지 않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주민들은 결국 30일 오후 4시에 다시 회의를 열겠다는 약속을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아냈다. 이날 대책위사무실에 모여 있던 주민들은 포스코 이구택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이 백운대에서 내년도 경영전략토론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회장을 만나러 가자면서 백운대로 향했다. 주민들은 오후 4시 10분부터 40여 분간 백운대 입구 도로에서 차량으로 막아선 포스코 경비직원들과 대치하기도 했다.

▲ 이날 회의장에는 200여명의 주민이 모여 회의장 밖까지 가득 메웠다. 한편, 14명의 대책위원과 주민 200여명이 참석한 30일 회의에서 김재신 위원장 등 포스코 제시안에 찬성했던 대책위원들 대부분은 주민들의 강요에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사퇴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1~2명은 별도로 사직서를 내겠다면서 끝까지 버티기도 했다. 이로써 지난달 23일 대책위의 결정은 사실상 무효로 돌아갔다. 주민들은 이날 회의에서 기존 대책위 부위원장을 맡아오던 배훈씨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고 비상대책위 구성에 관한 전권을 위임했다. 이에 배훈씨는 조속한 시일 안에 새로운 대책위를 구성해 포스코와 새로운 투쟁을 전개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비상대책위는 조만간 제철소 본부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광양시에는 주민건강역학조사를, 포스코에는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태인동주민↔포스코 대결 어디까지 왔나 태인동 주민들 아픔 보듬을 적극적 시정 아쉽다근본적인 해결책은 주민건강역학조사 실행 뿐대책위 포스코 제시안 수용투표 후 새로운 국면 ▲ 김재신 대책위원장이 주민들의 요구에 못이겨 주민들이 제시한 사퇴서에 사인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6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팀이 광양시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인근 주민건강실태조사 및 환경위해요인평갗의 최종결과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태인동 주민들의 대 포스코 환경개선 및 피해보상 투쟁은 지난달 23일을 분수령으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주민대책위를 중심으로 단일한 대오를 형성, 포스코와 맞서오던 태인동 주민들은 지난달 23일 이후 맞서 싸워야 할 포스코를 제쳐두고 그동안 주민을 대표해 협상을 이끌어왔던 주민대책위 위원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포스코를 상대로 했던 싸움이 주민과 주민대책위원회 간의 싸움으로 전환돼버린 이 기막힌 현실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가?

지난달 23일 오후 6시 태인동환경개선주민대책위원회(이하 주민대책위)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주민대책위는 이날 포스코 측이 주민들의 환경개선 및 피해보상 요구에 대한 답으로 제시한 네 가지 지역협력사업방안 수용여부를 20명의 대책위원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투표결과는 수용찬성 15명, 수용반대 4명, 기권 1명으로 나왔다. 이날 반대표와 기권표를 던진 사람은 포스코 제시안이 태인동 주민들의 요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미봉책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이거나 수용여부를 대책위원만의 투표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포스코가 태인동에 제시한 네 가지 지역협력사업안은 △연매출액 60~70억원, 채용직원 100명 규모의 포스코 아웃소싱기업에 태인동 주민 참여보장 △지역공익사업기금 20억원 지원 △나눔의 집 운영과 태인동 주민행사지원금 등 5억원 계속 지원 △포스코 연관기업에 태인동 주민 적극 채용 약속으로 확인된다. 

20명으로 구성된 주민대책위원 중 15명은 왜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싸움을 마무리 짓자고 했을까? 15명의 대책위원들은 이 네 가지가 지난 18년 동안 제철소로 인해 환경피해를 받아온 태인동 주민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될 수 있다고 과연 생각했던 것일까?

물론 아니다. 15명 대책위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는 지난 25일, 전날부터 대책위에 항의하기 위해 대책위 사무실로 몰려든 주민들에게 밝힌 김재신 위원장의 답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상자기사 참조>

▲ 대책위원들의 사퇴를 거세게 요구하고 있는 주민들. 문제는 태인동 주민들이 포스코로부터 환경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될 ‘주민건강역학조사’를 실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재신 위원장은 “광양시가 용역조사비를 마련하는데 난색을 표했다”고 밝히고 있다. 광양시는 2003년 5월부터 2004년 8월까지 15개월 동안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팀에게 ‘포스코 광양제철소 인근 주민건강실태조사 및 환경위해요인평갗 용역을 의뢰한 바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팀은 지난해 9월 16일 광양시청에서 ‘포스코 광양제철소 인근 주민건강실태조사 및 환경위해요인평갗 최종보고회를 열었고, 백 교수팀은 포스코가 태인동 주민들의 건강에 일정한 부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주민들은 이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면서 추가조사를 통해 보다 명확한 근거가 밝혀지기를 바라게 됐다. ▲ 11월 30일 열린 주민회의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된 배훈씨가 조만간 비상대책위원을 새로 구성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광양시는 2005년 본예산에 태인동주민건강실태조사 및 환경위해요인평가 2차 용역조사비로 1억5천만원을 반영해 의회의 승인을 얻었다.

그러나 이후 광양시는 “국가산단이기 때문에 환경부가 이를 조사해야 한다고 환경부에 건의를 제출해 환경부로부터 ‘광양산단의 건강영향조사 계획수립 및 착수에 필요한 예산을 국립환경연구원에 반영하겠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에 시 차원에서 조사할 필요가 없다”면서 용역조사비 집행을 미루고 말았다. 시는 특히 지난 3월 30일 첫 실무협의회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주민대책위와 산단기업, 광양시 3자가 참여한 광양산단환경개선협의회가 구성된 이후에는 3자 협의라는 틀 안에 갇혀 더욱 움츠려드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포스코와 태인동 주민간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절차인 주민건강역학조사 실행에서 시가 발을 빼버리자 주민대책위는 건강역학조사라는 멀고 험한 길 보다는 지역협력 차원의 협상이라는 쉬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의 결과가 지난달 23일 대책위원의 투료로 결정됐고 또한 그 투표의 결과는 주민과 주민대책위 간의 싸움으로 전환되는 형국을 만들고 만 것이다.

■태인동주민↔포스코 줄다리기 경과

▷2003년 5월~2004년 8월 광양시로부터 용역의뢰를 받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팀이 15개월 동안  ‘포스코 광양제철소 인근 주민건강실태조사 및 환경위해요인평갗 용역을 실시함  
▷2004년 9월 16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팀이 ‘포스코 광양제철소 인근 주민건강실태조사 및 환경위해요인평갗 최종보고회를 광양시청에서 개최함
▷광양시 2005년 본예산에 태인동 주민건강실태조사 및 환경위해요인평가 2차 용역조사비 1억5천만원 반영 
▷2005년 2월 17일 태인동환경개선주민대책위원회 발대식 가짐.
▷3월 30일 태인동주민대책위, 시, 기업 3자가 참여하는 ‘광양국가산단태인동환경개선협의회’ 구성을 위한 실무협의회 개최
▷이후 실무협의회 난항. 광양시는 주민건강역학조사 환경부에 건의함으로 시 차원의 조사는 유보할 방침 밝힘
▷5월 16일부터 1인 시위 돌입
▷6월 2일~10일 광양제철소본부 앞 천막농성.
▷10월 14일 태인동주민대책위 포스코 측에 네 가지 안 요구
▷11월 8일 포스코, 주민대책위 요구에 지역협력사업안 제시
▷주민대책위 집회신고 냄
▷11월 23일 주민대책위 포스코 제시안에 대한 찬반여부 표결
▷11월 24일부터 주민들 대책위 사무실 점거 등 대책위원 사퇴요구
▷11월 29일 대책위 회의 무산
▷11월 30일 주민들 대책위 회의서 사퇴 요구. 제철소본부 앞 천막농성 시작 뜻 밝혀

■인터뷰 - 김재신 태인동환경개선주민대책위원장“나는 대책위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주민 다수가 사퇴하라고 하면 그러겠다” ▲ 김재신 대책위원장이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김재신 대책위원장이 지난 25일 오전 대책위 사무실에서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밝힌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보상을 획득하려면 우리가 당하고 있는 환경피해의 실상과 그 원인자를 입증한 객관적인 자료(주민건강역학조사)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민건강학조사를 하려면 6~7억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하여 이 비용을 광양시에 요구했지만 시는 들어주지 않았다."

"따라서 주민건강역학조사를 하려면 우선 우리가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돈이 어디 있나. 역학조사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역학조사를 통해 피해보상을 받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이 방법도 생각해보았는데 그 방법은 기약도 없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실적인 방법으로 동네별(통별)로 주민요구안을 수렴해 네 가지(△세대 당 1천만원씩 1200세대에 120억원 + 매년 20억원 보상 △제철소 환경개선자금 중 10%를 매년 태인동 지역 협력사업으로 사용 △과거 20년 동안의 피해에 대해 1200억원 상당을 협력사업으로 요망 △500억원 상당의 사단법인 설립 후 태인동에 환원)를 포스코에 제시했다. 이후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포스코는 (위에 말한) 네 가지 말고는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 주민들의 질타를 받은 대책위원들이 사퇴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현장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다.
"네 가지 중에 공익사업지원기금 20억원은 태금중이설부지 매입자금으로 10억원과 주민자치센터건립부지 매입자금으로 10억원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렇지 않다. 태금중이설부지매입은 교육청 소관사업이고 주민자치센터건립은 시 소관사업이기 때문에 시장에게 이를 확보해달라고 요구했더니 긍정적인 답을 들었다. 20억원은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주민들이 대책위원들을 물러나라고 하기에 15명 대책위원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대책위가 투표를 한 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적인 결정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주민의 뜻을 물어 최종적인 결론을 내겠다. 여기에 온 사람들과 달리 말하지 않고 있는 다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는 29일 오후 2시에 태인동사무소에서 주민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어서 다수의 주민들이 물러나라고 하면 전원이 사퇴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 15개 통별로 주민의 뜻을 물어 대책위 결정에 반대하는 쪽이 많으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 나는 대책위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입력 : 2005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