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양식 창안한 김여익 공 추모제례 봉행
김 양식 창안한 김여익 공 추모제례 봉행
  • 광양신문
  • 승인 2006.10.20 16:12
  • 호수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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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김시식지유적보존회, 여익공 사당에서
▲ 김 양식을 창안한 김여익공을 모신 영모재.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지금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됐지만 태인도는 김 주산지로 유명했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김을 양식하기 시작한 김시식지로 잘 알려져 있다. 태인도 원주민들은 태인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김시식지라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태인도에서 김을 최초로 양식하기 시작한 사람은 김해김씨 해은(海隱) 여익(汝瀷)공(公)이다. 여익공은 조선 선조 39년(1606년) 전남 영암군 학산면 몽해에서 출생하여 35세 되던 해인 인조 18년(1640년)에 태인도로 들어와서 정착하여 살다가 현종 원년(1660년) 55세를 일기로 태인도에서 생을 마쳤다. 그러니까 여익공은 후손이 대대로 번창한 태인도 김해김씨 문중의 시조가 된다. 태인도 궁기마을에는 여익공을 모신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인 이곳에는 태인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지임을 입증하는 기록이 비문등초(碑文騰招)로 남아 보관되어 있다. ▲ 김재호 김시식지유적보존회장.
이 비문은 숙종 30년(1713년)경에 광양현감을 지낸 ‘허담’이 여익공의 5대손인 ‘태혁’의 수기에서 발췌하여 여익공의 묘표에 적었던 것이라고 전한다. 이 비문에는 여익공이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김여준을 따라 청주에 이르렀으나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장흥을 거쳐 태인도에 들어와 살았다고 적혀 있다.
 
김은 해의, 해태, 과전, 감태라고도 부르는데, 광양사람들은 김을 김으로 부르게 된 연원이  김 양식을 최초로 창안한 여익공의 성씨에서 딴 것으로 믿고 있다.
해마다 음력 10월 10일, 태인도 김해김씨 종중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김시식지유적보존회(회장 김재호ㆍ67)는 궁기마을에 있는 여익공의 영모재에 모여 제례를 올린다.
올해 음력 10월 10일은 양력으로 11월 11일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도 을유년의 제례일인 이날 오전 영모재에 모인 김시식지유적보존회 김해김씨 종중들은 여익공의 위패를 모신 인호사(仁湖祠)에 올라 엄숙하게 제례를 올렸다.
   
▲ 초헌관 김해김씨 문장어른 김재봉 옹.
이날 제례의 초헌관은 태인도 김해김씨 문장어른인 김재봉(84)옹이 맡았다.   
제례를 마친 종중들은 영모재에 둘러앉아 음복, 음식을 하며 종중의 중요사와 보존회의 운영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종중들은 최근 육군 장군으로 진급한 김재모 소장은 여익공의 11대손으로 종중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며 박수를 보냈고, 오는 19일 여익공의 선대의 제례인 영암제에 가능한 많은 종중들이 참석하자고 뜻을 모았다.
한편, 이날 제례에는 광양시 문화공보실 관계자와 김옥현 전 광양시장, 광양예총 김철호 회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입력 : 2005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