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85건) Ebook (1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하루도 눈물 마른적 없지만 유철이 명예회복이 우선” “하루도 눈물 마른적 없지만 유철이 명예회복이 우선” 지난 19일 잠자던 전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 12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연천군 최전방 GP(군 전방초소)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꼭 1년이 지났다. 이날 TV에는 유족들의 꽉 다물었던 입술을 끝내 비집고 나온 듯한 오열하는 울음소리가 추도 행사장을 찾은 참배객들의 폐부를 찔른 듯 방영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우리 지역민이 눈에 띄었으니바로 고 차유철 상병 가족들이다. 20일 총기난사 사고가 났던 연천GP(군 전방초소)를 방문해 헌화하고 돌아 온 고 차유철 상병의 아버지 차정준(광양읍 덕례리)씨를 만났다.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그 일만 없었으면 복학준비할텐데…” 8명의 희생 장병을 비롯해 12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연천군 최전방 감시소초(GP)에서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종합 | 이수영 | 2006-10-22 20:56 우리 지역 광복 60년 “어머니, 이제야 아버지를 되찾았습니다”“어머니,이제야 아버지를 되찾았습니다. 좀 더 오래 사셨더라면 아버지 되찾는 것을 보셨을 텐데...”인터뷰 내내 눈물만 흘렸다.“자식된 도리로 아버님의 염원을 이뤄 이제 한이 없습니다.” ‘집안의 금기’인 아버지 김지태 선생(金誌泰. 1911~1937)이 독립유공자로 밝혀져 지난 3.1절에 건국훈장을 받은 날 맨 먼저 4년전 돌아가신 어머니(안보순·1913~2001)가 떠 올라 아픔과 설움은 한순간에 눈물이 돼 흘러 내렸다.우리 정부가 지난 3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김지태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김영재(70)씨는 최근 인서리에서 덕례리로 이사한 자신의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파란만장했던 부친의 생애와 자신의 인생 역정을 털어놓았다.애국지사 김지태 선 자치행정 | 이수영 | 2006-10-09 16:23 “진실을 알면 화해의 장 열리리니” “진실을 알면 화해의 장 열리리니” “여순사건은 삭제당하고 침묵하는 당시의 역사를 오늘에 깨워 살리는 일이다. 역사의 아픈 울타리를 걷어내고 암울했던 벼랑 끝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염원이 무엇이며,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성찰의 역사이다. 상생과 평화, 그리고 인권을 위한 과거청산의 길에 다가서는 길이다.”19일 오전 11시 광양읍 유당공원. 이날 이곳에서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여순사건 57주기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1948년 여순사건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합동위령제가 광양에서 열린 것이다.이날 위령제는 지난 5월 3일 국회에서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과거사법)이 통과된 이후 전남동부 6개 지역 유족회와 29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구성한 여순사건57주기추모사업위원회가 지난 광양人 | 광양신문 | 2006-10-03 07:01 여순사건 순천유족회 하계수련회 전남동부지역 1만여명의 무고한 지역민이 학살 당했던 유족들의 모임인 여순사건유족회(회장 장준표) 하계수련회가 지난 13일 오전 11시 봉강면 신룡리에 있는 한 농가에서 순천과 광양 보성지역 유족회원 1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장준표(64)회장은 이날 본지와의 만남에서 “아버지 또한 덕례리 주령골에서 102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을 당할 때 포함돼 시신을 찾는데 10일이 소요됐다”며 “지난 2000년 6월12일 동부지역 유족 100여 명이 모여 명예회복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제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파병을 반대하면서 일어난 사건으로, 제주 4.3과 동일하게 진압군들이 여수·순천 지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여수·순천을 포함한 전 광양人 | 광양신문 | 2006-10-02 16:26 10월 19일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지난 19일 광양읍 유당공원에서는 매우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여순사건 57주기를 맞아 그날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전남동부지역 여순사건 유족회와 각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합쳐 마련한 합동위령제가 그것이다. 이날 합동위령제에는 유족회는 물론 제 종교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참석해 그 규모도 상당히 컸다. 경건함과 비장함 속에 거행된 이날 위령제를 지켜보는 우리도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날 위령제의 의미는 57년 만에 처음으로 여순사건으로 불려지는 우리지역의 아픈 역사가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눈부신 햇살이 내리 쬐는 열린 공간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의미는 여수와 순천이라는 이름에 가려져 있었던 그날의 역사 속에 광양도 함께 했었음을, 그리하여 여순사건이 온전한 광양의 역 칼럼 | 광양신문 | 2006-09-13 11:16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