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의 눈으로 꽃꽂이를 하고 있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꽃꽂이를 하고 있어”
  • 정아람
  • 승인 2012.10.29 09:57
  • 호수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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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실버빌 ‘꽃 할머니’ 임야무 어르신

은은한 꽃내음이 가득 퍼지는 광양읍 죽림리에 위치한 광양실버빌. 형형색색의 국화꽃들을 바구니에 꽂느라 어르신들이 분주하다. 바삐 움직이는 이들 사이로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더듬거리며 간신히 꽃 한 송이를 꽂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임야무(80) 할머니다.

임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점점 떨어지더니 결국 눈을 잃었다. 자식 얼굴도 단풍이 물드는 가을 풍경도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임 할머니는 행복하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방문하는 ‘꽃뜨루 봉사회’가 있기 때문이다. 

꽃뜨루 봉사회는 광양평생교육원에서 꽃꽂이를 배운 사람들이 모여 한 달에 한 번씩 광양 실버빌과 옥곡 요양원으로 가서 어르신들과 함께 꽃꽂이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임 어르신은 “우리 젊을 적엔 꽃이 귀해서 이런 호화스러운 장식을 한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라며 “눈이 보인다면 귀한 시간 내 꽃꽂이 가르쳐주는 봉사단 얼굴도 보고 더 멋있게 꽃 장식도 배울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실버빌에서 일명 ‘꽃 할머니’로 불리는 임 할머니의 꽃꽂이 실력은 전문가 못지않다. 임 어르신은 “늙은 것도 서러운데 봉사가 돼버린 것은 오죽하겠냐”며 “그래도 꽃꽂이 할 땐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어 행복해”라고 말했다. 눈이 멀자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임 어르신은 “내가 무슨 죄를 짓고 살아 봉사가 됐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단다. 그는 잘 짜인 갈색 바구니에 하얀 국화꽃을 꽂으며 “우리 아들, 딸들이 젤로 보고 잡아”라며 눈을 껌뻑거렸다. 임 어르신에게는 목소리가 얼굴이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목소리를 볼 수 있는 그는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도 지금 어떤 표정인지도 다 보인다고 말했다.

“꽃이 참 곱지?”라며 “그렇게 쳐다만 보지 말고 나 사진 좀 찍어줘”라고 말하는 임 어르신은 여느 보통의 어르신들과 똑같았다. 20여 년 전 지병으로 남편을 잃고 두 명의 시어머니와 8남매를 거두며 살면서도 불평 불만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한편에 남몰래 외로움과 슬픔을 안고 살았다. 젊었을 적 슬픔을 눈에 담고 잊을 줄을 몰라 결국 눈이 멀어버린 것 같다는 임 할머니.

흐를 것 같은 눈물을 감추고 그는 보라색 국화 꽃 한 송이를 잡으며 “더 열심히 해서 자식들도 하나 씩 주고 손자 손녀들도 줄거야”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였다. 비록 눈은 어둡지만 활기찬 에너지로 주변을 밝히는 그의 인생이야말로 꽃을 닮아 밝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