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현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참담한 현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 광양뉴스
  • 승인 2016.07.22 20:38
  • 호수 67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광섭 교육칼럼니스트

교육계에 몸을 담근 사람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최근 교육부 고위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라는 속내를 밝혀 인터넷 스타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인 그는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3세에 행시에 합격(36회)한 엘리트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교육부 장관 비서관과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2016년 3월, 교육부 정책기획관(2급)으로 승진했다.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교과서 국정화, 누리과정, 대학구조개혁 등 교육부의 정책을 기획하고 타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보직으로 기업의 전략기획실장에 해당한다.

2016년 7월 7일, 나 정책기획관은 교육부 대변인, 대외협력실(홍보·언론 담당) 과장과 함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교육부 출입기자들과 술자리를 겸한 저녁 식사를 했다.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무원 정책실명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나 기획관이 뜬금없이‘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민중은 개돼지’라며‘아, 그래.‘내부자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개 사육장이나 양돈장을 했어야 할 사람이 교육부 정책기획관을 하고 있으니 교육정책이 제대로 수립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국정 교과서가 나오는 거라는 비판을 한다. 나 기획관은“민중은 99%를 말한다”라면서“나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제 노력을 더 해야 할 듯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그는 교직발전기획과장 시절이던 2009년, 한 강연에서“누구든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교육으로 실현하겠다”고 뻐꾸기를 날린 바 있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건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같이 높은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니 미국에서 배운 얄팍한 지식을 입으로 토로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인다.

한 기자가“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 않은가. 사회가 안 변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고 지적하자 나향욱 기획관은 “그게 어떻게 자기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나”라고 황당해 했다.“우리는 내 자식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는 기자들에게 나향욱 기획관은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꾸짖었다니 그 본심은 어떤 것인지 의심이 간다.

기자들이“정부가 겉으로라도 사회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줄 알았다”며 실망감을 나타내자 나 기획관은“아이고,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라고 일침했다. 기자들은 자리를 떴으나 뒤따라 온 대변인과 과장이 해명을 들어볼 것을 설득해 자리로 돌아가 녹취를 시작했다.

나 기획관은“공무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을 편하게 얘기한 것”이라며“미국처럼 신분 사회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나”라고 해명했다. 이어 “구의역 사고를 당한 애가 다시 안 생기기 위해서라도 상하 간의 격차는 어쩔 수 없고 어찌 보면 합리적인 사회”라고 일갈했다. 즉, 상하 간 격차가 지금보다도 더 벌어지면 구의역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그는 수차례 녹취를 중지할 것을 요구한 끝에 대화를 중단했다.

다음날 저녁, 나향욱 기획관은 대변인과 함께 경향신문 편집국을 찾아와“과음과 과로가 겹쳐 본의 아니게 표현이 거칠게 나간 것 같다 취중진담. 실언을 했다 보도할 줄 몰랐다”고 사과했지만 경향신문이 당일 해당 발언을 보도해 시무룩해졌다고 전했다. 아무리 술자리더라도 기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평소 선민의식이 쩔어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부는 사과와 함께 나향욱 기획관을 대기발령하고 경위 조사에 나섰다. 대기발령은 징계 절차의 첫 단계다. 문제의 발언이 범죄도 아니고 이런 일로 파면될 가능성은 낮고 감봉, 정직 선에서 끝나지 싶다. 하지만 공무원, 특히 고위공무원은 감봉 처분을 받으면 승진이 어렵기 때문에 출세길은 끝났다고 봐도 좋다. 잠잠해지면 꿀보직으로 영전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개돼지 드립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47세 인생으로 승진이 빠른 편이고 차관은 물론, 인맥도 있겠다 장관도 노려 볼 만 했는데 개돼지 드립으로 개, 돼지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기생충이 되었다는 평가를 하는 소설가도 있다.

말이란 곧 그 사람이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세상을 절망으로 떨어뜨릴 줄은 자신도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말은 책임있는 말을 다 하기도 시간이 적다. 가치관이 결여된 능력이 사회를 어지럽게 한다.

쓸 때없이 아는 척하다 세상까지 어지럼증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