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운동회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5.15 08:53
  • 호수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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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아 ! 뛰어 ! " 선생님의 출발신호에 따라 출발선에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다섯살 난 하진이는 친구 세명과 함께 사탕이 매달려있는 곳까지 열심히 달린다.
엄마 아빠는 멀리서 마음을 졸여가며 딸아이의 달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달리기에서 일등, 이등이 그리 중요한 것은 분명 아닐진데 어린 딸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며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 마음이 조려지는 것은 어쩔도리가 없는가 보다. 어린 내 딸이 누구의 도움없이도 스스로 달리고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앞서 갈 수 있다는 것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기도한 것이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아닐까 ?
출발선을 떠난 하진이는 목표지점까지 아주 힘차게 달려왔는데 막상 실에 매달린 사탕을 입에 넣으려하는 순간 뒤따라 달려오던 남자아이의 머리가 하진이의 뒤통수를 강타하고 말았다.

" 아이쿠 ! 우리 딸아이에게 어찌 이런 일이…"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으며 순간적으로 전개될 아이의 다음 행동이 몹시 염려스러웠다. 갑작스럽게 머리를 부딪힌 것이 몹시 아팠는지 아니면 입에 들어오려했던 사탕이 사라진 것이 안타까웠던지 아이는 대성통곡하면서 한동안 울음을 그칠 줄 모른다. 운동장에는 하진이의 큰 울음소리가 멀리 메아리쳤다. 순간 유치원 선생님이 달려오고 엄마도 걱정이 되어 달려가고 아빠는 다만 멀리 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또 어느 순간에 달려왔는지 다른 경기를 하던 아들 동하도 하진이를 달래고 있다. 아주 힘들게 줄에 걸린 사탕을 하진이의 입에 물리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될 수 있었고 하진이는 도착지점까지 다시 뛰어갈 수 있었다. 선진이네 엄마 아빠를 비롯한 많은 동네 어른들도 이 광경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고 파안대소를 하기도 했다. 며칠 전 벌어졌던 봉강초등학교 운동회의 한 장면이었다. 지금까지  아이들 운동회에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오랫만에 보는 운동회의 장면이 생소하고 특별하기만 했다.
마치 수십 년 전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운동장에는 여전히  만국기가 펄럭였고 새 운동복을 입은 밝은 표정의 아이들의 발걸음이 힘찼다. 높은 연단에는 면장님을 비롯한 각 기관장님들이 좁은 의자에 앉아 학생들을 마주보고 있었고  볼륨이 유난히 큰 스피커에선 교장선생님의 힘찬 격려의 말씀이 울려퍼졌다. 애국가 제창과 국기에 대한 나의 맹세,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보건체조…식이 진행될수록 눈에 크게 들어오는 것은 아주 어릴적 내가 익히 보고 들어왔던 운동회의 광경이 옛날과 같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아빠가 운동회에 참석하는 것이 도회지에선 여간해선 어려운 일인데 여기와서 아이들의 학교운동장에 서서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학생들의 숫자가 적다보니 주변에 있는 3개 학교 학생이 동시에 모여 운동회를 하는 광경도 새롭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운동장에 비해 학생들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내 지나온 생활을 돌이켜보면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왜 그리 여유없이 앞으로만 달리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이 많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던 일을 가장 중요한 시기에 너무 몸과 마음을 던져가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그런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생긴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마을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는 내게는 잊혀졌던 생활방식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면민 체육대회도 그렇고 마을 사람들과의 여행도 그렇고  가끔 돼지 한 마리 잡아서 이웃 사람들 모두 모여 즐기는 잔치 같은 그런 즐거움이 있다. 세상은 뭐 그리 심각할 필요도 없고 크게 고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곳에서 살면서 또 배운다. 갈수록  세상사는 재미가 쏠쏠해지는 요즘 시골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