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익 공 제례 봉행
김여익 공 제례 봉행
  • 모르쇠
  • 승인 2007.11.22 09:13
  • 호수 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일 김 시식지 유적보존회, 여익공 사당에서
 
태인동에서 전국 최초로 김을 양식하기 시작한 김여익공에 대한 제례가 봉행됐다. 태인동 김해김씨 종중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김시식지유적보존회(회장 김옥현)는 지난 19일 궁기마을에 있는 여익공의 영모재에서 종중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례를 올렸다.

이날 제례 봉행은 초헌관에 김재무 전남도의회 부의장과 아헌관에 김상암 옹, 종헌관 김동현 옹이 각각 맡았다. 김여익공은 조선 선조 39년(1606년) 전남 영암군 학산면 몽해에서 출생해 35세 되던 해인 인조 18년(1640년)에 태인동으로 들어와 정착해 살다가 현종 원년(1660년) 55세를 일기로 태인동에서 생을 마쳤다.
 
태인동 궁기마을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인 여익공을 모신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이곳에는 태인동이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지임을 입증하는 기록이 비문등초(碑文騰招)로 남아 보관돼 있다. 이 비문은 숙종 30년(1713년)경에 광양현감을 지낸 ‘허담’이 여익공의 5대손인 ‘태혁’의 수기에서 발췌해 여익공의 묘표에 적었던 것이라고 전한다.
 

이 비문에는 여익공이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김여준을 따라 청주에 이르렀으나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장흥을 거쳐 태인도에 들어와 살았다고 적혀 있다. 김은 해의, 해태, 과전, 감태라고도 부르는데, 광양사람들은 김을 김으로 부르게 된 연원이  김 양식을 최초로 창안한 여익공의 성씨에서 딴 것으로 믿고 있다.

제례를 마친 종중들은 영모재에 둘러앉아 음복, 음식을 하며 종중의 중요사와 보존회의 운영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한편 이번 제례엔 김국, 부각, 자반, 무침 등 김으로 만든 음식 6종을 제상에 올려 김여익공의 은공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