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오월도 푸르다
설화의 오월도 푸르다
  • 최인철
  • 승인 2010.05.10 09:56
  • 호수 36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가가 되고픈 10살 설화의 꿈을 듣다
설화는 아주 예쁜 아이다. 호기심 많아 수업 가운데 과학시간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것과 저것을 맞추다 보면 스르르 구름과자처럼 해답을 보여주는 과학은 참 신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화의 꿈은 화가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한국화가다. 화가가 되면 제일 먼저 그리고 싶은 것이 엄마의 얼굴이다. 그 살갑게 그리운 얼굴을 가장 먼저 그려서 방 안 가득 놓아두고 싶다. 보고 싶은 엄마. 엄마는 멀리 부산에 있다. 다리가 아픈 설화가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3일 광양중진초등학교 교장실에서 설화를 만났다. 골육종암이라는 무서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설화에게 신광양라이온스(회장 박종선)에서 가슴 따스한 후원금 300만원을 전달하기 위한 고마운 자리.

할머니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설화는 아직 후원금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자기를 찾아와준 할아버지뻘 되는 라이온스 회원들의 얼굴도 낯선 모습이다. 조금은 긴장까지 돼 보이는 낯빛이다.

신광양라이온스 박종선 회장이 “아프지만 힘내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며 설화의 어깨를 다독이자 “예”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회원들은 “설화가 어른이 될 때까지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설화와 사랑을 나누고 희망을 나눠주는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적극 돕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설화의 꿈은 화가. 일 년이면 세 차례씩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탓에 수업일수가 친구들보다 한참 모자라지만 체육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런 설화는 언제부턴가 화가가 돼야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화가가 되면 엄마의 얼굴을 가장 먼저 그리고 싶어요. 보고 싶은 엄마를 가까이서 볼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설화의 모습은 아직 엄마 품이 필요한 열 살짜리 꼬마의 그리움이 고스란하다.
설화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함께 산다. 엄마는 부산에 있다. 엄마는 한 번 입원할 때마다 6~7백만 원에 이르는 설화의 치료비 때문에 설화가 입원하는 기간만 빼고 직장생활을 포기할 수 없는 탓이다. 그래서 그리움은 설화가 어릴 적부터 품어온 오래된 슬픈 감정이다.

하지만 설화는 밝다. 구김살이 느껴지지 않는 천진한 얼굴이다. 설화는 “엄마가 내일(4일)온다. 학교 체육대회와 어린이날이어서 엄마가 온다고 했다”며 환하게 웃음이 솟았다. 또 “나도 체육대회에서 뛰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쉽다”며 “달리는 것은 못해도 손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은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설화의 얼굴에서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났다.

설화는 종종 옛 일들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한다. 오랜 항암치료 때문이다. 어릴 적 웅변을 아주 좋아했지만 설화에게는 웅변을 좋아했다는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러나 설화는 현재도 아름다운 기억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 엄마 품에 시름없이 잠들기를 꿈꾸면서 아주 소중한 기억들을 날마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설화의 모습이 밝은 것일 게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신광양라이온스 한 회원은 “아픈데도 이렇게 의젓한 설화를 보고 있자니 어른들 보다 낫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설화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며 “오히려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설화에 대한 응원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어린이재단과 전남도교육청, 광양로타리연합, 동광양농협에서 설화에게 힘을 보태기로 했다. 따스함은 또 다른 따스함을 불러온다. 좋은 계절이다.